엔델 테오도로비치 리프마

Endel Teodorovich Lippmaa

인산염 광산 계획을 내부에서 막아낸 에스토니아 과학자

TV 토론에 서류 가방을 들고 나와 상대가 반박할 때마다 해당 문서를 꺼내 사실을 입증하곤 했다.

에스토니아의 물리화학자이자 정치인. 탈린공과대학에서 유혈암 기술을 전공한 뒤 소련권 최초로 NMR 분광계를 자체 제작하며 고체 고분해능 핵자기공명 분야의 선구자가 되었다. 에스토니아 과학아카데미 회원 시절 1987년 인산염 광산 계획의 환경·인구적 위험을 보고서로 폭로해 '인산염 전쟁'의 지적 토대를 마련했고, 소련 인민대의원으로서 독소불가침조약 비밀의정서를 발굴·공개해 발트 병합의 법적 근거를 무너뜨렸으며, 독립 회복 후 두 차례 장관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유혈암 화학에서 핵자기공명 분광학으로

리프마의 학문 경력은 에스토니아의 산업적 특산물인 유혈암에서 출발해 세계적 수준의 분광학 연구로 나아간 과정이었다. 1953년 탈린공과대학을 유혈암 기술 전공으로 졸업한 그는 1956년 같은 학교에서 「열분해로 얻는 에스토니아 유혈암 생성물의 동역학」이라는 학위논문을 defended했고, 이를 끝으로 유혈암 화학 연구를 접고 핵자기공명(NMR) 분광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옮겨 약 반세기 동안 이 분야에 종사했다. 1969년에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화학물리학연구소에서 「오버하우저 핵효과와 유기화합물의 구조」로 물리·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1년 화학물리학 및 물리화학 교수 자격을 얻었다.

연구의 초점은 고체 고분해능 NMR이었다. 1980년 발표한 규산염의 29Si 고체 NMR 구조 연구는 고분해능 NMR이 유기물이나 생물학적 시료뿐 아니라 무기물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선구적 작업으로 평가된다. 1961년부터 1980년까지 그는 에스토니아 과학아카데미 사이버네틱스연구소 물리학 부문 책임자였고, 1980년부터는 자신이 설립한 화학·생물물리학연구소(KBFI)의 소장(2001년까지)과 화학물리학 연구실 책임자(2005년까지)를 맡았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분석분광학 우수센터 소장을 지냈고, 이후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고에너지 입자물리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1972년 에스토니아 과학아카데미 회원(통신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75년 정회원이 되어, 1975년부터 학술원 이사회 이사,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물리·수학·공학 부문 학술서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천문학·물리학 부문 책임자를 지냈다. 소련 시기에도 미국물리학회(1975)와 미국화학회(1975) 회원이 되는 등 국제 학계와 폭넓게 교류했으며, 1990년 핀란드 학술원, 1992년 스웨덴 왕립공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89년 영국왕립화학회 백주년 기념 강연 메달, 1992년 막스 플랑크 연구상을 받았고, 1999년에는 에스토니아 대중이 뽑은 20세기 100대 인물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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