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쥐고도 침공을 놓친 GRU 수장, 다시 전선에서 원수로
1941년 3월 20일, 골리코프는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올봄 소련에 대한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소문과 문서들은 영국, 어쩌면 독일 정보기관까지 가담한 허위정보로 간주해야 한다." 94일 뒤 바르바로사가 시작되었다.
농민 출신 정치지도원으로 내전에 참전한 후 11년간 군 정치기관에서 복무하다 프룬제 사관학교를 마치고 지휘관으로 전환했다. 1940년 7월 GRU 정보총국장에 올랐으나, 1941년 봄 독일 침공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영미의 도발적 허위정보'라고 보고해 바르바로사의 전략적 기습을 막지 못했다. 독소전에서 모스크바 반격의 10군과 브랸스크·보로네시 전선군을 지휘했고, 1943년 1월 두 차례 대공세로 적 25개 사단을 격멸했으나 그해 3월 하리코프 상실로 전선에서 물러났다. 전후 인사총국장을 거쳐 1958년 글라프PUR 총정치국장으로 흐루쇼프 시기 당의 군대 통제를 담당했고 1961년 소련원수가 되었다.
경력 연표
- 1918–21적군 자원입대, '붉은 독수리' 연대에서 내전 참전, 정치지도원
- 1921–31군 정치기관에서 선전·선동 부서장 역임, KUVNAS 졸업(1929)
- 1931–3895연대장 → 61사단장 → 8기계화여단장 → 45기계화군단장
- 1938–39벨로루시 군관구 군사평의회 위원, 빈니차 군집단·6군 사령관
- 1939–406군 사령관으로 폴란드 침공과 겨울전쟁 참전
- 1940–41부참모총장 겸 GRU 정보총국장 — 바르바로사 직전의 첩보 평가
- 1941–42소련 군사사절단장(영·미) → 10군 사령관(모스크바 반격) → 브랸스크 전선군 사령관
- 1942보로네시 전선군 사령관 → 1근위군 사령관 → 스탈린그라드 전선군 부사령관
- 1942–43재임명된 보로네시 전선군 사령관 — 오스트로고시스크-로소시, 보로네시-카스토르나야, 하리코프 공세, 이후 해임
- 1943–50국방인민위원부 인사총국장 · 송환 담당 전권위원(1944~)
- 1950–56독립기계화군 사령관
- 1956–58기갑군사아카데미 원장
- 1958–62소련군·해군 총정치국장(글라프PUR), 1961년 소련원수 진급
- 1962–80국방부 총감찰원, 1980년 7월 29일 모스크바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