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코티

François Coty
프랑스 프랑스 1874–1934 ○ 재정 파탄 뒤 병사

향수 재벌의 돈으로 극우 동맹과 대중지를 함께 사들인 후원자

1928년 그는 한 부에 10상팀짜리 일간지를 창간해 발행 부수를 백만 부 가까이 끌어올렸다. 신문은 손해를 봤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값이 싼 만큼 널리 읽혔고, 그 지면에서 자란 언어가 1934년 2월 광장에 나온 대열들의 언어가 되었다

코르시카 출신으로 향수 산업에서 당대 유럽 최대의 재산을 쌓은 실업가. 1922년 《르 피가로》를 사들이고 1928년에는 값싼 대중지 《라미 뒤 푀플》을 창간해 반공과 반유대, 반의회 선동의 무기로 삼았다. 조르주 발루아의 파소와 초기 불의 십자단을 지원했고 1933년에는 연대 프랑스를 직접 만들어 자금을 댔다. 그의 이력은 1930년대 프랑스 극우 동맹의 물음, 곧 누가 이 조직들의 비용을 댔는가에 대한 대답의 큰 몫이다. 1934년 2월 6일 광장에는 그가 세운 조직이 대열로 나와 있었고, 그는 그해 7월 이혼 소송과 재정 파탄 끝에 죽었다.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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