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기조

François Guizot

7월 왕정 말기의 총리로 선거권 확대를 거부하고 개혁 연회를 금지한 교조파 역사가·정치가

1787년 님의 개신교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역사가로 이름을 얻은 뒤 7월 혁명 후 루이 필리프 정부에서 1832~1837년 교육장관으로 모든 코뮌에 초등학교를 세웠고, 1840년 런던 대사, 1840~1847년 외무장관을 거쳐 1847년 9월 19일 총리가 되었다. 「교조파」의 지도자로 재산 소유자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제도를 고수해 「부자가 되시오」라고 조언했다고 전해진다. 1848년 1월 개혁 연회를 금지한 것이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2월 23일 국왕의 요구로 사임한 뒤 벨기에를 거쳐 3월 3일 런던에 닿았다. 그 뒤 정치에서 손을 떼고 노르망디 발리셰에서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다른 이름: 프랑수아 피에르 기욤 기조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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