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헤커

Friedrich Hecker

1848년 4월 공화국을 내걸고 봉기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해 북군 연대장이 된 바덴의 민주주의자

1811년 바덴의 아이히터스하임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만하임 고등법원 변호사가 되었다. 1842년 바덴 제2원 의원으로 뽑혀 정부 반대에 앞장섰고, 1847년 9월 12일 오펜부르크 집회에서 슈트루베와 함께 13개 요구를 내놓았다. 1848년 프랑크푸르트 예비의회에서 독일을 공화국으로 선포하자는 동의안을 냈다가 실패하자, 4월 12일 슈트루베와 함께 무장 봉기를 호소했다. 7만 명을 기대했으나 수천 명만 모였고 4월 20일 칸데른에서 패했다. 스위스로 피했다가 9월 미국으로 이주해 일리노이 벨빌 근처에 농장을 샀다. 남북전쟁에서 제24·제82 일리노이 보병연대를 이끌었고 1863년 챈슬러즈빌에서 중상을 입었다. 1881년 일리노이의 농장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프리드리히 카를 프란츠 헤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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