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연합국 정상회담을 누빈 소련 외교관, 몰로토프의 대리인
처칠이 구세프에 대해 묻자, 주소 영국대사 클라크 커는 이렇게 답했다: '무례하고, 경험 없고, 교양 없는 자입니다.'
표도르 구세프는 스탈린 시대 외교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대영국 대사(1943~1946)를 지내며 테헤란·얄타·포츠담 회담에 모두 참가했다. 레닌그라드 법학을 전공하고 1935년 외무인민위원부에 입부한 그는, 캐나다 공사(1942~1943)를 거쳐 전시 동맹 외교의 핵심 실무자로 부상했다. 영국 측은 그를 '무뚝뚝하고 경험 없는 인물'로 평가했지만, 스탈린과 몰로토프는 전쟁 말기 연합국과의 협상에서 요구를 밀어붙일 강경한 외교관을 원했다. 종전 후 외무차관(1946~1952)을 지내며 냉전 초기 외교 정책에 관여했고, 1956~1962년 스웨덴 대사를 끝으로 은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5– 외교·국제활동 · 소련 · 외교
경력 연표
- 1935외무인민위원부 입부
- 1938–1939외무인민위원부 제3서방과장
- 1941–1942외무인민위원부 제2유럽과장 (영국·자치령 담당)
- 1942–1943주캐나다 소련 공사
- 1943–1946주영국 소련 대사
- 1946–1952소련 외무차관
- 1956–1962주스웨덴 소련 대사
- 1975은퇴
관련 역사 사건
전후 외교장관회의에서의 소련 대표
1945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외교장관회의에서 구세프는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대리인으로 소련 대표단을 이끌었다. 회의는 매일 오전 차관급 대리인 회의에서 의제를 준비하고 오후 외무장관 회의에서 논의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평화조약 문제에서는 해당 항복문서에 서명하지 않은 정부의 대표가 토론에는 참여하되 표결권은 갖지 않는다는 규칙도 채택됐다. 구세프는 9월 11일 첫 회의 참석자 명단에 소련 측 대표로 기록됐다. 런던 회의 의제에는 이탈리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평화조약, 이란 주둔 연합군 철수, 독일 배상 문제, 소련 시민 송환 촉진 등이 포함됐다. 몰로토프는 베를린 회의에서 이미 정한 의제에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배상과 송환, 그리스 정세를 추가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12월 모스크바 외무장관회의에서도 구세프는 런던 주재 소련 대사 자격으로 몰로토프와 함께 참석했다. 당시 미 국무부 문서는 그를 몰로토프의 대리인으로 적었으며, 일본의 연합국 관리기구와 극동위원회 권한을 둘러싼 협의 자리에 그의 참석을 기록했다. 이 회의에서 구세프가 개별 제안이나 결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회의록의 해당 기록만으로 특정하기 어렵다. 전후 외교에서 그는 대사직과 별도로 외무장관회의의 소련 대표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