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롭스키의 13년 오른팔, 데탕트기 KGB 대외첩보의 짧았던 수장
KGB 도청 부서가 감청 중인 스위스 주재원의 전화에 누군가 망을 봐주었다. 추적 결과, 발신자는 다름 아닌 제1총국장 모르틴 자신이었다. 그는 그해 휴가를 떠난 뒤 다시는 루뱐카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하롭스키의 13년 오른팔로 냉전기 KGB 제1총국의 대외첩보 실무를 지휘하다 1971년 총국장이 된 소련의 첩보 장군이다. 재임 중 PGU 본부를 야세네보로 옮기고 과학기술 첩보를 확충하며, 브란트 정부와의 비밀 채널이 가동되던 데탕트 초기의 해외 정보활동을 총괄했으나 부하 간부를 감청에서 지키려 한 전화 한 통으로 불과 2년 반 만에 크류치코프에게 자리를 넘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7–1950 보안·정보·치안 · 소련 · 국가보안 기관
경력 연표
- 1937–1939시골 학교 물리·수학 교사
- 1939–1940지구 콤소몰 위원회 서기
- 1940–1941지구 중학교 교장
- 1941–1942지구 당위원회 조직부장
- 1942–1945현역군 정치장교, 레닌그라드 방어전 참가
- 1945–1947소련군 군사외교 아카데미에서 중국어·영어 습득
- 1947–1950KGB 대외첩보 장교, 장기 해외 파견
- 1950–1954CPSU 중앙위원회 기구 근무
- 1954–1958KGB 제1총국(PGU) 부국장
- 1958–1971KGB 제1총국(PGU) 제1부국장
- 1966–1967KGB 제101학교(고등정보학교) 교장 겸임
- 1971–1974KGB 제1총국(PGU) 국장
- 1974–1975소련 각료회의 과학기술 국가위원회 과학기술협력국장
- 1975–1982KGB 의장 자문단 선임 자문관
- 1982정년 퇴직
관련 역사 사건
제1총국장 시절: 야세네보 이전과 비밀 채널(1971~1974)
사하롭스키가 물러난 뒤 1971년 7월 제1총국장에 오른 모르틴은 조직의 물리적·기능적 개편기를 이끌었다. 재임 중 총국은 루뱐카의 옛 건물을 떠나 모스크바 외곽 야세네보의 새 청사로 옮겼는데, 모르틴은 보안 유지를 위해 경비 초소에 '과학연구센터'라는 간판을 걸도록 지시했고 그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부국장 시절인 1966~1967년 정보학교를 겸임했던 경험대로 그는 교육기관의 현대화에도 관심을 두었고, 과학기술 첩보를 확충하는 한편 일선 간부들로부터는 아이디어가 많고 추진력 있는 상사라는 평을 들었다. 이 시기 총국은 브란트 사회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서독과의 접촉에 참여했다. 12월 1970년 모스크바 조약으로 이어진 이른바 동방정책의 비밀 통로에서 소련 측 상대는 총리실 국무차관 에곤 바르였고, 같은 시기 동독 정보기관은 바르의 집에 도청 장치를 심어 협상 내용을 파악했다. 모르틴의 임기는 길지 않았다. 1974년 1월 그는 휴가를 떠난 뒤 총국장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서술자에 따라 후임 크류치코프의 음모, 혹은 스위스 주재원에 대한 도청 경고 전화가 경질의 배경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는 과학기술 국가위원회의 협력국장을 거쳐 1975년부터 KGB 의장 자문단에서 일했고 1982년 정년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