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알코올 캠페인의 핵심 선전가였던 최고령 집도 외과의사
레닌그라드의 한 교수가 젊은 우글로프의 수술 보고를 듣고 '이건 뮌하우젠 남작의 허풍이다'라고 말했다가, 직접 수술을 검토한 뒤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
시베리아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사라토프 의대를 졸업하고, 겨울전쟁과 900일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외과의로 복무했다. 식도·종격동·폐·심장 수술을 개척했으며, 102세까지 수술실에 서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반알코올 캠페인에서 '어떤 음주도 용납될 수 없으며 술 취함은 러시아 민족의 본성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전국에 유포한 핵심 선전가였고, 종신토록 금주 운동을 이끌었다.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의 배후로 유대인 음모론을 제기하고 록 음악을 마약으로 분류하는 등 러시아 민족주의 우파와 결합한 과격한 주장으로 논란을 낳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29사라토프 의대 졸업, 지역 의사
- 1939–1945겨울전쟁과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외과의로 복무
- 1950–1991제1레닌그라드 의대 병원외과 제2학과장
- 1953–2006『베스트니크 히루르기』 편집장
- 1967소련 의학아카데미 정회원
- 1985『환상의 포로』 출간, 반알코올 캠페인 핵심 선전가
- 1988전인민 금주 투쟁 연합 의장
- 1994기네스 세계기록: 최고령 집도 외과의
관련 역사 사건
겨울전쟁과 레닌그라드 포위전, 흉부외과 학파
1939년 겨울전쟁에서 우글로프는 핀란드 전선 의무대대의 상급 외과의로 복무했다. 1941년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자 그는 포위된 도시에 남아 900일 동안 병원 하나의 외과 과장으로 일했다. 그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한 달 동안 병원장 직무를 대행하며 환자 식사 시식 의무를 맡았던 것이 굶주린 포위 도시에서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종전 후에도 그는 레닌그라드 의사고등연구원에서 진료와 연구를 이어갔다.
전시의 임상 경험은 그의 학문적 주제를 정했다. 1939년 천골전부 기형종 연구로 후보 학위를, 1949년 폐 절제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 제1레닌그라드 의과대학 병원외과학 제2학과장에 취임해 1991년까지 재직했고, 1972년까지 소련 보건부 폐질환 연구소장을 겸했다. 이 임상 기반에서 여러 제자가 배출되며 하나의 외과 학파가 형성됐다.
수술 영역에서 그는 소련에서 처음으로 식도와 종격동 수술, 문맥고혈압, 췌장 선종, 폐 질환, 선천성·후천성 심장판막증, 대동맥류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외과의 중 한 사람이다. 1981년과 1982년에는 '인공 심장판막과 그 제조 방법'을 발명으로 등록했고, 1961년에는 폐 질환의 외과적 치료법을 개발한 공로로 레닌상을 받았다. 1953년부터 2006년까지 소련에서 가장 오래된 외과 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베스트니크 히루르기』의 편집장을 맡았고, 과학 학술지에 6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겼다. 1994년에는 1929년 이후 65년간 외과의로 일한 최장 경력자이자 세계 최고령 현역 외과의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100세를 앞두고도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을 집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