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기의 장기 재무장관
25년간 소련 예산을 쥐고 흔든 그가 남긴 말: "예산이란 국가경제계획이라는 엉덩이에 난 뾰루지다. 불편해도 앉을 수는 있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목수 견습공으로 일하다 하리코프 재정경제대학을 졸업했다. 키예프 재정경제대학 학장과 우크라이나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을 거쳐, 1960년부터 1985년 사망할 때까지 25년간 소련 재무장관을 지냈다, 소련 역사상 최장 재임이다. 1965년 코시긴 경제개혁의 구상에 참여했으며, 브레즈네프 시대 내내 보수적 예산 운용으로 재정 안정을 유지했다. 당 중앙위원과 최고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981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경력 연표
- 1930s–1950s재정기관과 우크라이나 재정 행정에서 성장
- 1960–1985재무장관, 정체기 예산·가격·국가재정 운용 담당
- 1965코시긴 개혁 이후 기업 인센티브와 예산통제의 균형을 관리
- 1970s군비와 사회지출이 커지는 구조 속에서 보수적 재정 지속성 유지
- 1985고르바초프 집권 직후 사망, 장기 재무행정의 시대가 끝남
관련 역사 사건
재정 보수주의와 장관의 집무 방식
가르부조프는 25년 재임 기간 동안 소련 재정 운영에서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부처 장관들이 추가 예산을 요청하러 올 때면 40년 넘게 바꾸지 않은 자신의 사무실 가구를 가리키며 "먼저 적자를 없애고 오라"고 말했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나무로 깎은 '쿠키시'(무화과 손짓) 조각상이 놓여 있어 예산을 졸라대는 각료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가르부조프는 신임 간부가 와도 인사와 업무 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25년 동안 해임된 국장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주 5일 근무를 엄수했으며, 금요일 오후 4시 45분이면 무거운 체구를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번은 회의가 길어지자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라며 오후 6시 이후 근무를 거부했다. 직원들의 급여조차 타 부처보다 낮게 유지할 만큼 인색했으나, 영화 제작에는 아낌없이 자금을 지원했고 바흐탄고프 극장 배우들과 깊이 교류했다. 그가 즐겨 하던 말은 "예산이란 국가경제계획이라는 엉덩이에 난 뾰루지다. 불편해도 앉을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