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콜빈

Геннадий Васильевич Колб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7–1998 ○ 심장마비

낯선 러시아인 당간부로 임명되어 젤톡산 봉기를 촉발한 인물

1986년 12월 16일, 알마아타에서 열린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총회는 단 18분 만에 끝났다. 모스크바에서 급파된 라주몹스키가 쿠나예프의 해임과 콜빈의 임명을 통보하자, 회의장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겐나디 콜빈은 소련의 당 기구에서 평생을 보낸 전형적인 브레즈네프식 간부였으나,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로 임명되면서 예기치 않게 역사의 분수령에 서게 되었다. 니즈니타길 출신의 러시아인으로 카자흐스탄과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그의 임명은 알마아타에서 수천 명의 카자흐 청년들이 거리로 나서는 젤톡산(12월) 봉기를 촉발했고, 이는 소련 민족문제의 폭발을 예고한 최초의 대규모 저항이었다. 이후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인민통제위원회 의장을 지내다 1990년 은퇴했고, 1998년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그루지야 2서기 시절(1975~1984): 셰바르드나제와의 반부패 연대

스베르들롭스크 주당위원회 2서기로 있던 콜빈은 주위원회 1서기 자리를 두고 벌어진 인사에서 밀려나 1975년 그루지야 공산당 중앙위원회 2서기로 파견되었다. 그는 1984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고, 그루지야 공산당 1서기였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와 함께 일했다. 콜빈이 밀려난 자리에는 당시 스베르들롭스크 주위원회 건설부장이던 보리스 옐친이 관례를 뛰어넘어 임명되었고, 이 인사는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을 갈랐다.

당시 그루지야는 소련에서 가장 불안한 지역으로 여겨졌고, 셰바르드나제는 그림자경제와 부패에 맞선 청소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콜빈은 이 개혁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참여한 인사 정리는 약 20명의 장관과 44명의 구당위원회 서기, 3명의 시당위원회 서기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종종 강경하고 완고한 관리로 묘사되는 콜빈은 훗날 카자흐스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인사와 규율을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루지야 시절은 그가 연방 공화국 당기구의 최고위 간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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