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리흐 안드레예비치 포고샨

Հենրիկ Անդրեյի Պողոսյան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르메니아인 1931–2000 ○ 자연사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 쪽으로 기울게 한 최후의 당 제1서기

1988년 7월 소련 최고회의 연단에서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책은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나는 대안을 보지 못한다."

1931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태어난 아르메니아인 당료로, 1988년 2월 24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당위원회 제1서기에 임명되어 불과 4일 전 지역 소비에트가 아르메니아 통합 결의를 통과시킨 직후의 폭발적 상황을 물려받았다. 임기 중 3월 당 플레넘을 주재해 모스크바에 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 이관을 공식 요청했고, 7월에는 소련 최고회의 연단에서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서 분리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선언했다. 모스크바는 1989년 1월 그를 해임하고 아르카디 볼스키의 특별관리위원회로 대체했으며, 해임 후 모스크바에서 은퇴 생활을 하다 2000년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카라바흐 이관 운동과 모스크바의 거부

1988년 2월 24일 겐리흐 포고샨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당위원회 제1서기로 선출되어 보리스 케보르코프의 뒤를 이었다. 2월 20일 자치주 인민대표 소비에트가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에서 아르메니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으로의 이관을 청원하기로 결의한 뒤였다. 3월 17일 포고샨이 주재한 당위원회 플레넘은 지역 소비에트의 결의를 승인했다. 이는 지역 당 지도부가 이관 요구를 공식적으로 지지한 조치였다.

7월 18일 소련 최고회의 상임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의하자, 포고샨은 자치주가 아제르바이잔에 계속 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분리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날 보도된 타스 통신 인용에 따르면 그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해 온 고향이라고 설명했다. 상임위원회는 이관 요구를 거부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 두면서 실질적 자치와 사회·경제·문화 발전을 약속했다. 1989년 1월 소련 최고회의 상임위원회는 아르카디 볼스키가 이끄는 특별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주 당위원회와 소비에트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이로써 포고샨의 당 지도자 임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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