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곁에서 고르바초프와의 대화를 밀어붙여 냉전 종식을 이끈 국무장관
슐츠는 레이건 부부와의 저녁 식사에서 소련 지도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듣고 깨달았다. '이 사람은 공산당 지도자와 대화를 해본 적이 없고, 몹시 하고 싶어 하는구나.'
조지 슐츠는 노동·예산·재무·국무의 4개 부처 장관을 모두 지낸 두 미국인 중 하나로, 레이건 행정부에서 6년 반 동안 국무장관을 맡아 대소 외교의 방향을 다시 썼다. 국방장관 와인버거와 CIA 국장 케이시가 협상을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슐츠는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와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네바(1985)와 레이캬비크(1986) 정상회담의 외교적 토대를 놓았다. 그 결과 1987년 INF 조약으로 사상 처음 핵무기 한 급 전체가 폐기되었고, 슐츠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동유럽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냉전의 종식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의 회고록 『격랑과 승리』는 1980년대 외교사의 핵심 사료로 남아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20뉴욕시 출생, 뉴저지주 엥글우드에서 성장
- 1942–1945해병대 장교, 앙가우르 전투 참전
- 1969–1974노동장관 → OMB 국장 → 재무장관, 브레턴우즈 체제 종료
- 1974–1982벡텔 사장, 중동 건설 사업 확장
- 1982–1989국무장관, 제네바·레이캬비크 정상회담, INF 조약
- 1989–2021스탠퍼드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핵군축 및 탄소세 운동
- 1993회고록 『격랑과 승리』(Turmoil and Triumph) 출간
관련 역사 사건
1974~1982년 벡텔 경영과 정부-기업의 회전문
1974년 5월 슐츠는 재무장관직을 끝으로 닉슨 행정부를 떠나 대형 엔지니어링·서비스 기업 벡텔 그룹의 부사장이 되었고, 이후 그 회사의 사장 겸 이사로 올라섰다. 그의 지도 아래 벡텔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대형 건설 계약을 따냈으며, 그가 회사를 떠나기 직전 해의 매출은 50퍼센트 늘어났다. 그는 1996년까지 벡텔 이사회에 남아 있었으므로 이 관계는 공직 생활보다 오래 이어졌다.
이 경력은 1982년 7월 16일 레이건 대통령이 알렉산더 헤이그를 대신해 그를 제60대 국무장관으로 지명했을 때 곧바로 문제가 되었다.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여러 상원의원이 벡텔 고위 경영진 출신이라는 점과 국무장관직 사이의 이해 충돌 가능성을 제기했고, 슐츠는 이 문제를 묻는 질문에 잠시 화를 냈다. 그럼에도 상원은 그를 만장일치로 인준했다. 이 회전문은 냉전 말기 미국 외교가 군사·외교 문제만이 아니라 자본과 자원의 이해관계와 함께 움직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2000년대의 선택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1998년 조지 W. 부시 후보 지명을 일찍 지지했고 2000년 선거운동에서 비공식 자문을 맡았으며, 2003년 침공을 지지하는 글을 전쟁 몇 달 전에 썼다. 동시에 그는 1983년 의회 증언에서 산디니스타 정부를 '이 지역의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암'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와 콘트라 지원을 잇는 이란-콘트라 방식, 곧 인질을 위한 무기 거래에는 반대했다. 니카라과 정부와의 협상에 대해서는 '협상은 협상 테이블 위에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으면 항복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