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마르셰

Georges René Louis Marchais
프랑스 공산당 유로코뮤니즘 프랑스 1920–1997 ○ 자연사

유로코뮤니즘에 가담했다가 소련 쪽으로 되돌아간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칼바도스의 라 오게트에서 태어난 기계공으로, 점령기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메서슈미트 공장에서 일했다. 1947년 프랑스 공산당에 들어가 1959년 정치국원, 1961년 조직 담당 서기가 되었다. 1972년 6월 사회당과 공동강령에 서명했고, 같은 해 12월 서기장이 되어 1994년까지 당을 이끌었다. 1975~1977년 베를링구에르, 카리요와 함께 유로코뮤니즘의 공동선언을 냈고, 1976년 제22차 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버렸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소련 쪽으로 돌아서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지했다.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15.3퍼센트로 4위를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1975~1979년, 유로코뮤니즘에서 소련 쪽으로

마르셰는 서기장 초기에 전임자 로셰의 「좌파 연합」 노선을 이어 1974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의 미테랑을 지지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과 거리를 두며 서유럽 공산당들의 「유로코뮤니즘」 수렴에 적극 참여했다. 1975년 9월 파리와 11월 로마에서 베를링구에르와 만나 공동선언을 냈고, 1977년 3월 카리요의 초청으로 마드리드에 모여 세 서기장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1976년 제22차 대회에서 프랑스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버렸고, 소련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에도 항의했다.

그러나 당원 수의 증가는 선거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고, 전후 줄곧 좌파 제1당이던 공산당은 사회당에 따라잡혔다. 1977년 9월 공동강령 개정 협상이 깨졌고, 좌파는 여론조사에서 앞서고도 1978년 총선에서 졌다. 소련 지도부의 질책과 사회당의 성장 앞에서 마르셰는 당을 다시 소련 쪽으로 돌렸다. 1979년 12월 그는 중앙위원회의 방침과 달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공개 지지했고,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소련 노선으로 재정렬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