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산당
French Communist Party
1920년 12월 투르 대회에서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의 다수파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하며 세운 프랑스의 공산당. 처음 이름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C)였고, 1943년 현재 이름이 되었다. 인민전선과 레지스탕스를 거쳐 전후 프랑스 좌파의 제1세력이 되었으나 1970년대부터 세력이 줄었다.
상세
투르 대회의 다수파가 세운 새 당의 첫 사무총장은 뤼도비크오스카르 프로사르였고, 영어 출처는 호찌민이 창당에 참여한 선동가 가운데 하나였다고 적는다. 당은 곧 공산당-SFIC(PC-SFIC)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0년대에는 볼셰비키화와 1925년부터의 스탈린화를 겪으며 창립 당원이 잇달아 제명되었고, 리프 전쟁 때 모로코 봉기군과의 형제애를 주장하는 등 반식민주의를 내세웠다. 1924년 총선에서 9.8%와 26석을 얻었으나, 다른 정당과의 제휴를 거부한 1932년에는 8.3%로 떨어졌다. 1930년 모스크바의 요청으로 모리스 토레즈가 지도자가 되어 1964년까지 당을 이끌었다.
1934년 2월 6일 극우 폭동 뒤 당은 SFIO·급진당과 인민전선을 이루었고, 1936년 선거에서 72석과 15%를 얻었지만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라 블룸 정부에 참여하지 않고 지지만 했다. 스페인 공화국을 지원했고, 1938년 뮌헨 협정을 비난한 유일한 프랑스 정당이었다. 독소 불가침조약 뒤인 1939년 9월 26일 달라디에 정부가 당을 금지했다. 당은 1941년 봄부터 무장 저항에 나서 민족전선과 유격대(FTP)를 조직했으며, 1943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해산에 따라 프랑스 공산당이 되었다. 해방 뒤에는 「총살된 7만 5,000명의 당」을 자처했는데, 프랑스어 출처는 역사가들이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은 총살·추방 레지스탕스 수를 2만 5,000명으로 본다고 적는다.
1945년 10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26.2%로 제1당이 되었고, 1944~1947년 3당 연립에 참여해 사회보장 제도 수립에 관여했다. 1947년 5월 정부에서 밀려난 뒤 30년 동안 20%가 넘는 득표에도 정권에 들지 못했다. 1972년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었으나 사회당에 세력을 내주었고, 1981~1984년 미테랑 정부와 1997~2002년 조스팽 정부에 참여했다. 2009년부터 좌파전선에 참여했고, 2026년 당비를 낸 당원 약 3만 7,600명을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