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25일,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위원 블라고느라보프는 겨울궁전 포격을 지휘했다. 요새의 전시용 대포는 사격이 불가능해, 병사들이 무기고에서 3인치 야포를 손으로 끌어내 급히 배치했다.
차르 군대 장교 출신으로 1917년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10월 혁명 당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위원으로서 요새 포대의 겨울궁전 포격을 지휘하고 임시정부 각료들을 트루베츠코이 능보에 구금했다. 이후 체카·OGPU 수송국장으로 철도 보안과 도로 건설을 감독했으며, 1936년 국가보안 1급 위원이 되었다. 대숙청 속에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당했다.
경력 연표
- 1917.3RSDLP(b) 입당, 예고리옙스크 소비에트 의장
- 1917.10–12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위원·사령관
- 1918.6–7동부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 1921–1931체카·GPU·OGPU 수송국장
- 1929–1932교통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 1935–1936중앙 고속도로·자동차수송국장 (구쇼스도르)
- 1936–1937NKVD 고속도로건설총국장, 국가보안 1급 위원
관련 역사 사건
체카·OGPU 수송국: 10년간의 철도 보안
블라고느라보프의 가장 오래 지속된 제도적 기여는 1921년부터 1931년까지 10년간 이끈 체카·GPU·OGPU 수송국이었다. 이 부서는 철도와 수로를 따라 배치된 방첩 및 정치 경찰 기관으로, 전국 교통망 전반의 '사보타주'와 '반혁명 활동'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내전 이후 혼란과 복구가 병존하던 시기, 수송국은 전략 물자 수송로를 통제하며 소련 경제 안보의 중추로 기능했다.
1929년에는 교통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을 겸임하게 되면서, 보안 기관의 수송 감독권과 민간 철도 행정을 한 사람이 동시에 쥐는 독특한 위치에 섰다. 이는 소비에트 체제에서 정치 경찰과 경제 관료제의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는 1927년과 1930년 두 차례 적기훈장을 받았으며, 재임 기간 중 수송국의 구조는 단순한 방첩 부서에서 독립적인 핵심 부서로 승격되었다. 1931년 교통인민위원부로 완전히 자리를 옮기면서 이 역할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