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배신하지 않는다 — 20년 뒤 체포된 CIA 이중간첩 폴랴코프에 대한 첫 경고가 왔을 때 치뇨프가 한 말이다.
브레즈네프가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당 시절부터 신임한 야금 기술자 출신 KGB 간부로, 부의장 자리에서 15년간 안드로포프 의장의 움직임을 총비서에게 직접 보고한 'KGB 안의 브레즈네프의 눈'이었다. 육군대장·사회주의노동영웅까지 올랐으나 음모와 전횡으로 동료들의 평판은 나빴다.
경력 연표
- 1925–39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야금 공장 노동자 · 기술자
- 1939–41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당 간부 (브레즈네프 아래서 근무)
- 1941–45군 정치위원: 칼리닌 전선 폴리트국 부국장 → 제57군 폴리트부장
- 1945–51소련 측 오스트리아 연합국위원회 보좌관 · 부최고위원
- 1953–58주독 소련군 특별부장 (MVD/KGB)
- 1966–67KGB 제3국장 (군 방첩)
- 1967–70KGB 제2총국장 (방첩)
- 1970–82KGB 부의장 (군 방첩·수사부서 총괄)
- 1982–85KGB 제1부의장
- 1985–92국방부 총감찰관단 감찰관
관련 역사 사건
즈다놉스카야 살인 사건: KGB 안의 브레즈네프 방패
1980년 12월 26일, KGB 암호보안 장교 뱌체슬라프 아파나시예프 소령이 모스크바 지하철 '즈다놉스카야' 역에서 경찰관들에게 구타당한 뒤 살해 목적으로 외곽에 유기되어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은 KGB 의장 안드로포프와 MVD 장관 니콜라이 셸로코프 간의 전면적 충돌로 비화했다. 셸로코프는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당 시절부터 브레즈네프와 함께한 측근이었고, KGB 부의장 치뇨프 역시 같은 뿌리에서 브레즈네프의 대리인으로 안드로포프 곁에 배치된 인물이었다. 사건 초기 KGB 콜레기야 회의에서 치뇨프는 아파나시예프가 단순 교통사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MVD를 보호하려 했고, 이를 간파한 안드로포프는 수사를 KGB 수사부가 아닌 소련 검찰청으로 이관했다. 이후 치뇨프는 방첩국장 우딜로프와 함께 셸로코프를 찾아가 수사 중단을 요구했으며, 셸로코프는 수사관에 대한 물리적 위해를 암시했다. 안드로포프는 이에 대응해 그룹 'A'(알파) 대원들을 수사관 경호에 투입했다. 치뇨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경찰관 4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MVD 내 80건의 추가 범죄가 적발되면서 셸로코프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치뇨프가 단순한 정보원을 넘어, 브레즈네프의 후견망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 절차 자체를 무력화하려 한 정치적 행위자였음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