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라티온에서 강등된 농민 출신 사령관, 불같은 성격의 육군대장
예료멘코 원수는 이렇게 평했다: '자하로프는 머리는 나쁘지 않고 의지가 강하지만 끔찍한 무례자다. 제대로 파악도 안 하고 사람에게 소리지르고 때로는 구타하기까지 한다.'
사라토프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11세부터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1916년 징집되었다. 1917년 10월 병사들에게 연대장으로 선출된 후 적군에 합류, 동부전선에서 내전을 치렀다. 프룬제 사관학교와 참모아카데미를 마친 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선군 부사령관으로 좌익 부대를 성공적으로 지휘했고, 제2근위군을 이끌며 미우스 강 방어선 돌파와 세바스토폴 해방에 기여했다. 1944년 제2벨로루시 전선군 사령관으로 바그라티온 작전에 참가했으나 공세 지연으로 신임을 잃고 제4근위군 사령관으로 강등되었다. 전후 남우랄·동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과 비스트렐 과정장을 지냈다. 날카로운 작전 감각과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9–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6–1917러시아 제국군 징집, 준위 학교 졸업. 10월 병사들에 의해 연대장 선출
- 1919적군 입대, RKP(b) 입당. 동부전선에서 내전 종군
- 1923–1939비스트렐 과정·프룬제 사관학교·참모아카데미 졸업. 우랄 군관구 참모장(1939–1941)
- 1941–1942제22군 참모장 → 브랸스크 전선군 사령관 → 서부전선군 부사령관
- 1942–1943스탈린그라드 전선군 부사령관 — 좌익 부대 지휘로 반격 성공
- 1943–1944제2근위군 사령관 — 미우스강·페레코프 돌파, 세바스토폴 해방
- 1944제2벨로루시 전선군 사령관, 육군대장 진급. 바그라티온 후 제4근위군 사령관으로 강등
- 1945–1954남우랄·동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 비스트렐 과정장,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
관련 역사 사건
1916~1926년: 병사가 뽑은 연대장에서 참모 학교까지
1916년 3월 징집되어 제133예비보병연대 교도대와 1917년 치스토폴 준사관학교를 마친 뒤, 같은 해 10월 소위 계급으로 병사들에게 연대장으로 선출되었다. 10월혁명이 장교단을 무너뜨린 자리에서 병사들이 직접 지휘관을 뽑은 사례로, 그가 이후 쌓은 지휘 경력의 출발점은 상급자의 임명이 아니라 부하의 신임이었다.
전선에서 사라토프로 돌아온 그는 현지 당파 부대 지휘를 맡기며 내전에 들어갔고, 1919년 8월 적군에 합류해 동부전선에서 백위군과 싸웠다. 제4군 제51독립보병대대 제4소총중대장으로 우랄 전선에서 부상을 당한 뒤, 블라디카프카즈로 보내져 제1소총대대장을 맡았다.
내전이 끝난 뒤에는 참모·교직 쪽으로 길을 넓혔다. 1922년 7월 코민테른 명의의 고등전술사격학교(비스트렐)에 파견되었고, 1923년 수석 졸업자 자격으로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명의의 통합군사크렘린학교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1926년 11월부터는 그 학교의 편제부장과 부장을 지냈다. 이 무렵 레닌이 연대장인 그를 불러 생도들의 생활을 자세히 물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이후 1932년 쿠이비셰프 군사공정학교에서 물자·기술 담당으로 일했고, 프룬제 군사학교 야간과정을 1933년에 마쳤으며, 1937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결정으로 참모아카데미에 파견되어 1939년 4월 우랄 군관구 참모장이 되었다. 1917년 병사들이 뽑은 연대장은 22년 만에 군관구 참모장이 되었고, 그 사이를 실전 지휘와 학교 교육, 참모 실무가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