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통계의 허구를 폭로한 대안적 경제사가
「형성된 경제 메커니즘은 명령경제와 시장경제의 모든 최악의 측면을 결합했다」: 1965년 개혁에 대한 평결.
그는 1970년대부터 소련 공식 통계를 독자적 방법으로 재계산하여, 1928~1985년 국민소득 증가가 공식 84.4배가 아닌 6.6배에 불과하다는 충격적 결과를 도출한 경제학자다. 1987년 바실리 셀류닌과 함께 『노비 미르』에 발표한 「기만적 숫자」는 소련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러시아 현대 경제사』 전집을 집필하며 소련 계획경제의 성취와 실패를 냉철히 분석했고, 1965년 코시긴 개혁에 대해서는 '명령경제와 시장경제의 모든 최악의 측면을 결합한 개혁'이라는 평결을 내렸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9레닌그라드 재정경제대학 졸업
- 1959–1962리가 산업체 경제사
- 1965–1973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 강사
- 1979–1986이스키팀 건자재산업 연수원 강사
- 1986–1991투바 종합연구부 СО АН СССР 경제연구실장
- 1992중앙경제수리연구소 경제학 박사
- 1995–현재노보시비르스크 국립기술대학 교수
- 2003–2011『러시아 현대 경제사』 1~3권 출간
관련 역사 사건
1973~1987년: 통계와의 비공개 전쟁
1968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주제로 쓴 후보 학위논문은 최고학위검정위원회의 승인을 얻지 못했고, 그는 1972년 이 대학에서 해고되었다. 자본시장의 작동을 이해할 목적으로 증권거래소를 연구해 1973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에서 학위를 다시 땄지만, 이 무렵 이미 소련 경제의 실제 성장률을 다시 계산하는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1955년 이후의 성장률을 재구성한 그는 1950년대 말부터 성장률이 계속 떨어졌고 제8차 5개년계획(1966~1970)도 예외가 아니며, 외연적 성장 요인이 소진된 결과 1980년대 중반에는 정체에 이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표된 적 없는 이 계산은 1976년 여름 즈베니고로트에서 열린 중앙경제수리연구소의 연례 회의에서 처음 학계에 제시되었다. 이후 그는 산업 생산, 국민소득, 고정자산, 자재소비량의 실제 증가를 재는 여러 방법을 만들어 250쪽 분량의 계산 자료를 작성했고, 그 일부는 1982~1985년 잡지에 위장된 형태로 실렸다. 같은 시기 그는 브레즈네프와 국가계획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임박한 정체를 알리고 기업의 자율성 확대를 제안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1986년 봄 예정되어 있던 박사학위 논변이 무산되면서 연구직을 잃었고, 전공 분야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반년 동안 이웃 도시의 중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쳤다. 이 조건에서 나온 결과가 1987년 2월 《노비 미르》에 실린 「기만적 숫자」였다. 그해 봄 중앙통계청은 이 글을 중상이라고 규정하고 반박했으며, 1988년 《코무니스트》에 계산표를 포함한 글이 실린 뒤에야 비판이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