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말기와 전환기의 고스플란 계획가
스탈린 사망 직후인 1953년 3월 고스플란 의장에 올랐으나 넉 달 만에 사부로프에게 자리를 넘겼다. 워낙 짧아 많은 연구서가 이 임기를 아예 기록하지 않는다.
열여섯 살에 볼셰비키에 입당한 소련의 경제 계획가로, 루간스크 기관차 공장 노동자에서 적군 정치장교를 거쳐 중앙계획의 핵심 간부로 올라섰다. 전시에는 산업 대피와 군수 물자 생산을 조정하는 군사경제 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전후 고스플란 기관지 《플라노보예 호자이스트보》의 편집장(1944–1949)을 지냈다. 1953년 3월부터 6월까지 말렌코프 제1차 정부 아래에서 사부로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임기 사이에 잠시 고스플란 의장을 맡았으며, 이후 1957년까지 다시 제1부의장으로 복귀했다. 말년에는 재무차관과 재무부 산하 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소비에트 재정 50년》(1967) 편찬을 주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0–1949 경제·재정·계획 · 소련 · 중앙계획 기관
경력 연표
- 1917–1922적위대 · 파르티잔 · 제42소총사단 정치일꾼
- 1922–1929톨마초프 군사정치아카데미 수료 후 군사정치학교 교원
- 1929–1937적색교수경제연구소 수료, 프룬제·레닌 군사정치아카데미 정치경제학 주임
- 1940–1949고스플란 부의장 · 《플라노보예 호자이스트보》 편집장(1944–1949)
- 1949–1953고스플란 제1부의장 · 초대 코메콘 소련 상임대표(1949)
- 1953 (3–6월)고스플란 의장
- 1953–1957고스플란 제1부의장
- 1957–1970재무차관(1957–1960) · 재무연구소 소장(1960–1970)
관련 역사 사건
코메콘 초대 소련 상임대표(1949)
코메콘(상호경제원조회의)은 1949년 1월 5~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비공개 경제회의에서 소련,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알바니아 대표들이 창설을 결정한 정부 간 경제 기구다. 창설 의정서는 그해 1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서명되었고 본부도 모스크바에 두었다. 이 기구는 소련과 동유럽 인민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긴밀한 경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며, 초기에는 마셜 플랜에 대응하는 성격을 띠었다.
코샤첸코는 이 기구가 막 출범한 1949년에 소련의 상임대표를 맡았다. 이는 그가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역임한 고스플란 제1부의장직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보직이었다. 다만 코메콘 자체의 실질적 활동은 1960년 무렵부터 본격화되었으므로, 코샤첸코의 임기는 조직 창설기의 초기 대표직에 해당한다. 이 보직은 그의 이력에서 대외 경제 협력 부문을 담당한 시기로, 국내 계획 업무와 구분되는 별도의 활동 영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