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할힌골의 승리자, 숙청된 극동전선 사령관
1939년 7월 5일 국방인민위원 명령으로 시테른을 사령관으로 하는 전선집단이 편성되어 제1붉은기군, 제2붉은기군, 자바이칼군관구, 제57특수군단을 통제했다. 7월 19일 제57특수군단이 주코프의 제1군집단으로 개편되었다.
1900년 8월 6일(구력 7월 24일) 키예프현 스멜라(현 우크라이나 체르카시주)에서 태어나 1941년 10월 28일 사망한 소련 군사지휘관이다.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1918년 키예프의 볼셰비키 지하 활동에 참여했고, 1919년 붉은 군대에 입대해 내전기 정치위원으로 복무했다. 1937~38년 '그리고로비치'라는 성으로 스페인 내전 공화국군 주임 군사고문을 지냈고, 1938년 하산 호 전투에서 제39소총군단을 지휘했다. 1939년 7월 5일 전선집단 사령관으로 할힌골 전투를 총괄해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다. 1941년 체포되어 트로츠키주의 음모와 독일 스파이라는 자백을 강요당했고, 10월 28일 쿠이비셰프 인근에서 재판 없이 총살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9–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9붉은 군대 입대, 남부전선에서 정치위원으로 복무
- 1924투르키스탄에서 바스마치 토벌
- 1929프룬제 군사아카데미 동양학부 졸업, 국방인민위원부 참모
- 1936제7사마라기병사단장
- 1937–1938스페인 내전 공화국군 주임 군사고문 (가명: 그리고로비치)
- 1938극동전선 참모장 → 하산 호 전투에서 제39소총군단 지휘
- 1938–1939제1독립붉은기군 사령관
- 1939할힌골 전투 전선집단 사령관 — 소비에트연방영웅 수훈
- 1940제8군 사령관 (겨울전쟁) → 극동전선 사령관, 상장 진급
- 1941방공총국장 → 6월 체포, 10월 28일 재판 없이 처형
관련 역사 사건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정치위원
- 1936–1939스페인 내전공화국군 주임 군사고문 「그리고로비치」1937년부터 고문단을 이끌며 과달라하라 작전을 지도했다
- 1937–1938대숙청전시 비사법 처형의 표적극동전선 사령관과 방공총국장을 지낸 소비에트연방영웅으로, 1941년 체포되어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 1938–1941소련-일본 국경 전쟁과 중립조약극동전선 참모장 → 제1군 사령관블류헤르가 밀려난 뒤 하산 호에서 실질적 작전지휘를 맡아 8월 6일 총공세를 지휘했다. 명령 제0040호는 '시테른 동지의 능숙한 작전 지도'를 승인했다. 전후 제1독립붉은기군 사령관.
- 1939.11–1940.03겨울전쟁제8군 사령관1940년 1월 3일, 포위된 제18소총사단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버티라고 했다.
- 1941–1945대조국전쟁극동전선 사령관 · 하산·할힌골 전투 지휘
스페인 내전 참전자 사면과 부하 장교들: 탄압기의 처신
시테른은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 주임 군사고문으로서 쌓은 지위를 이용해 탄압의 위기에 놓인 동료를 변호한 사례가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 인터내셔널여단을 지휘했던 카롤 시비에르체프스키 대령이 체포되자, 시테른은 스페인 주재 선임 소련 군사고문이라는 자신의 경력을 들어 그를 직접 보증했다. 시비에르체프스키는 대조국전쟁을 무사히 넘겨 장성으로 승진했고, 1945년에는 연합국 측 폴란드군의 고위 직책을 맡았다. 이는 시테른이 같은 스페인 내전 참전 군인을 감싸기 위해 자신의 입지를 동원한 사례로 기록된다.
할힌골 전투를 둘러싼 증언은 해석이 갈리므로 출처를 밝혀 인용해야 한다. 표트르 그리고렌코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할힌골에서 주코프는 규율의 수단으로 총살을 선호하여 병사와 장교를 가리지 않고 매일 총살 명령을 내렸으며, "시테른은 자신의 권한으로 이 괴물 같은 판결을 매우 자주 취소했다"고 한다. 같은 회고는 시테른이 제1군집단으로 날아가 주코프와 단둘이 대화한 뒤 군 직할에서 각 부대를 원래 소속으로 되돌리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는 서로 다른 해석이 공존하는 증언자 회고이며, 주코프의 회고록에는 시테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주제의 배경으로, 한 출처는 시테른을 뛰어난 소련 지휘관 중 한 사람이자 전선집단 사령관이라는 높은 직책에 오른 유일한 유대인으로 평가하면서, 스탈린이 그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고 할힌골 이후 주요 승진은 주코프가 가져간 반면 시테른은 극동에 남았다고 지적한다. 그의 처신에 대한 평가는 출처마다 갈리므로 각각 귀속해 서술해야 한다.
한편 부하를 감싼 지휘관이라는 이미지만으로 그의 기록을 단순화할 수는 없다. 겨울전쟁기인 1940년 1월 3일, 제8군 신임 사령관 시테른은 제56소총군단장에게 포위된 부대가 제60소총사단 선두 부대의 도움을 받으려면 6~7일이 걸릴 것이라고 통보했다. 총참모부 주군사평의회가 필요할 경우 포위된 사단의 철수를 승인했음에도 시테른은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제18소총사단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버텨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그를 부하의 보호자로만 그리지 않기 위해 함께 기록하는 반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