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의 총탄에 쓰러져 포툠킨 반란을 촉발하고, 장례는 오데사 혁명 시위가 된 수병
「지체하는 것은 혁명을 실패시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도처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도 공동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볼린 지방의 우크라이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898년 흑해함대에 징집되어 포툠킨함의 포병 부사관이 되었다. 1903년 RSDLP에 입당하고 세바스토폴 수병 중앙위원회(첸트랄카) 결성을 주도한 선동가로, 전함에 붉은 기를 숨겨 두고 함대 전체 봉기를 준비했다. 1905년 6월 27일 썩은 고기에 항의하는 수병들 앞에서 기량롭스키 부함장의 총에 치명상을 입었고, 이틀 뒤 오데사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은 대규모 정치 시위로 전환되어 포툠킨함이 육상 포격으로 답하게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8흑해함대 징집
- 1900기뢰·포술학교 졸업, 전함 포툠킨 포수 배치
- 1903RSDLP 입당, 세바스토폴 수병 첸트랄카 결성 참여
- 1905.06.27포툠킨 반란 중 기량롭스키 부함장에 치명상, 함상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젠트랄카와 1905년 6월 함대 봉기 계획
1904년 4월 흑해함대의 흩어진 사회민주주의 서클들이 하나의 비합법 조직으로 통합되었고, 수병들은 이를 세바스토폴 수병 중앙위원회, 곧 젠트랄카라 불렀다. 1905년 4월 런던에서 열린 RSDLP 제3차 대회는 러시아에서 무장 봉기를 향한 정책을 채택했고, 이 결정에 따라 젠트랄카는 1905년 가을로 예정된 흑해함대 전면 봉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젠트랄카는 여러 연안 도시의 RSDLP 위원회 및 제네바에 있던 레닌과 연락을 맺었다.
이 준비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포툠킨함의 포술 하사관 바쿨렌추크였다. 그는 젠트랄카 회의에 참여해 봉기를 즉시 일으킬 것을 주장하며, 지체하는 것은 혁명을 실패로 이끈다는 논지를 폈다. 이 발언은 동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6월 24일(구력 11일) 그는 젠트랄카 지도부를 설득해 포툠킨함이 흑해 함대 봉기를 주도하도록 했다. 함내에는 그가 숨겨 둔 붉은 기가 있었고, 함대 전체 차원의 봉기를 염두에 둔 준비였다.
그러나 계획은 예정보다 앞당겨지고 있었다. 1905년 6월 초 세바스토폴 요새 포병대의 동요와 이를 옹호한 예카테리나 2세호와 트리 스뱌티텔랴호 수병들의 행동 때문에 젠트랄카는 봉기 시기를 1905년 여름으로 앞당겼다. 동시에 젠트랄카 지도부는 포툠킨함을 혁명성 면에서 가장 뒤처진 함정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바쿨렌추크는 즉시 봉기를 주장하는 한편으로, 함대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이번 폭발이 시기상조라고 보았다. 그의 사망과 뒤이은 함대 계획의 붕괴는 이 미완의 준비 국면에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