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란다우어

Gustav Landauer
독일 유대계 독일인 1870–1919 ✕ 구타 · 총격으로 살해

독일의 아나키스트 사상가이자 바이에른 혁명 정부의 교육 담당자로, 1919년 진압군에 살해되었다.

국가는 사회적 관계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때 국가는 다른 사회적 관계로 대체된다.

란다우어는 국가를 단순히 전복할 권력기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 보고, 자발적 공동체를 만들어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08년 사회주의자 동맹을 세워 협동조합과 공동체를 통한 사회주의 실천을 모색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으며, 카를 아이스너의 요청으로 1918년 뮌헨에 와 혁명 정부를 지원했다. 1919년 4월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에 참여해 계몽·공교육 담당 인민위원을 맡았고, 공화국 진압 뒤 체포되어 5월 2일 스타델하임 교도소에서 살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사회주의자 동맹과 협동조합의 구상

란다우어는 추상적 미래상이나 국가권력 장악을 기다리는 대신, 자본주의적 질서 바깥에서 협동과 공동체를 지금부터 조직하는 일을 사회주의의 출발로 삼았다. 1907년 발표한 「민중과 토지: 사회주의에 관한 30개 명제」는 베를린의 아나키스트와 독립사회주의자들에게 실천 조직을 만들자는 자극을 주었다. 1908년 5월 베를린 공개 집회에서 강연한 뒤 여러 지역 모임이 사회주의자 동맹(Sozialistische Bund)으로 결집했다. 동맹은 파업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들의 연방을 지향했으며, 가능한 한 국가와 자본주의 체계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적 기반을 만들려 했다. 1908~1909년 란다우어는 동맹의 전단을 발행했고, 1909년에는 기관지로 삼을 목적으로 《데어 조치알리스트》를 다시 펴냈다. 《사회주의를 위하여》(1911)가 출간될 무렵 동맹에는 베를린과 취리히를 비롯한 독일·스위스 여러 도시에 스무 개 모임이 있었고 파리에도 한 모임이 활동했다. 란다우어는 1910년 글에서 사회주의자 동맹과 공산주의자들의 차이는 미래 사회의 구체적 모형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모형을 거부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실천을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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