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 중국에 공산당의 씨앗을 뿌리고 스탈린주의·나치즘 둘 다에 맞선 네덜란드 혁명가
1942년 4월 12일 밤 아메르스포르트 수용장에서 총살형 직전, 스네블릿은 집행대에 묶인 채로 나치에게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동지 일곱 명과 함께 「인테르내셔널」을 불렀다. 그는 사수에게 손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네덜란드 혁명가. 동인도에서 인도네시아공산당의 전신 ISDV를, 코민테른 특사로는 중국공산당 창당과 국공합작을 중개했다. 스탈린주의와 나치즘 모두에 맞서다 1942년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02–1911네덜란드 철도·전차노조(NV) 간부, 1911년 위원장
- 1912사회민주당(SDP) 합류, 《De Nieuwe Tijd》 기고
- 1914–1918동인도 — ISDV 공동 창립, 철도노조 조직, 식민당국에 추방
- 1920코민테른 제2차 대회 PKI 대표, 집행위원 선출
- 1921–1923코민테른 중국 대표 — CCP 창당 입회, 쑨원 접촉, 제1차 국공합작 중개
- 1924–1927네덜란드 공산당 중앙위원, NAS 서기, 스탈린주의와 결별
- 1929–1938RSAP 창당·지도, 국제혁명사회주의통일국 참여
- 1933–1937하원의원 — 군함 반란 지지로 수감 중 당선
- 1940–1942MLL-Front 조직, 『스파르타쿠스』 발행, 1941년 2월 파업, 체포·처형
동인도에서의 혁명 활동: ISDV와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의 기원 (1913–1918)
1913년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스네블릿은 식민지 혁명운동의 실질적 개척자로 활동했다. 1914년 그는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이 함께 참여하는 반자본주의 조직인 동인도사회민주협회(ISDV)를 공동 창립했다. ISDV는 네덜란드 식민 통치와 인도네시아 특권 엘리트 양쪽 모두에 반대했으며, 훗날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의 직접적 전신이 되었다. 스네블릿은 또한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 노동자를 함께 조직한 철도·전차노조(VSTP)에서 활동하며, 네덜란드에서 쌓은 노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온건한 노조를 보다 공세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노조는 이후 인도네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되었다. 스네블릿의 가장 혁신적인 전술은 대중조직 사레카트 이슬람(Sarekat Islam)에 대한 침투 전략이었다. 수백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이 반식민 이슬람 조직 내부에 ISDV 간부들이 개별적으로 가입해 좌파 블록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 '블록 내부(bloc within)' 전략은 훗날 중국에서의 국공합작 구상으로 직접 이어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스네블릿의 급진적 영향력은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물론 네덜란드군 수병들 사이에서도 확대되어 식민 당국의 경계를 샀다. 1918년 5월 1일 네덜란드 군함 '수라바야'호에서 그가 '동인도 함대의 적위대 동지들이여!'라고 시작한 연설은 당국의 우려를 결정적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1918년 12월 그는 식민지에서 추방당했다. ISDV는 1920년 PKI로 재편되어 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산당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스네블릿과 함께 활동한 세마운, 다르소노, 탄 말라카 같은 인도네시아 혁명가들은 이후 독립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코민테른 중국 특사: 중국공산당 창당과 제1차 국공합작 (1921–1923)
1921년 6월 상하이에 도착한 스네블릿(가명 마링)은 코민테른 집행위원 자격으로 중국공산당 창당을 실무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리다에게 정식 전국대표대회 소집을 촉구했고,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입회했다. 12월에는 남중국으로 건너가 쑨원을 직접 접촉, 국민당(KMT)과의 협력을 제안했다. 스네블릿의 핵심 구상은 이른바 '블록 내부 전략(bloc within)'이었다. 이는 공산당원이 개인 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하여 내부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동시에 당의 조직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이 구상은 인도네시아에서 그가 사레카트 이슬람(Sarekat Islam)을 상대로 펼친 침투 전술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었다. 스네블릿은 1922년 여름 모스크바로 돌아가 집행위원회에 이 전략을 보고했고, 승인을 받아 중국으로 복귀했다. 1923년 제3차 당대회에서 공식 채택된 이 노선은 제1차 국공합작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1927년 국민당의 공산당 탄압으로 붕괴될 때까지 중국 혁명의 기본 골격으로 작동했다. 스네블릿은 쑨원으로부터 KMT 상임고문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고, 1924년 초 코민테른 임무 종료 후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가 설계한 국공합작 노선은 이후 코민테른의 식민지·반식민지 전략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