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하는 ‘산업가’가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본 프랑스 사상가
『공산당 선언』 제3장은 그를 푸리에·오언과 함께 계급 투쟁이 덜 발전한 시기에 나온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 체계의 창시자로 꼽는다.
파리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해 요크타운 포위전에 참여했다. 혁명기에 국유재산 투기로 돈을 모았고 공포정치 시기에 투옥되었다. 『산업』, 『조직자』, 『산업가의 교리문답』 등에서 과학자·기업가·노동자를 아우르는 생산적 ‘산업가’가 무위도식하는 계급 대신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만년의 『새 그리스도교』에서는 가장 가난한 계급의 처지 개선을 내세웠다. 『공산당 선언』이 그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 정치 운동을 보지 못한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분류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평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779–1783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해 요크타운 포위전에 참여했다.
- 1793–1794공포정치 시기 생트펠라지와 뤽상부르에 갇혔다가 테르미도르 9일 뒤 풀려났다.
- 1803첫 저작 『제네바 주민의 편지』를 펴냈다.
- 1816–1817『산업』을 펴냈고, 1817년부터 오귀스트 콩트가 비서로 함께 일했다.
- 1823–1824『산업가의 교리문답』을 펴냈다.
- 1825『새 그리스도교』를 펴내고 그해 파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