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이쇼 넬슨

Horatio Nelson
영국 국가기관 반혁명 영국 잉글랜드 1758–1805 ✕ 트라팔가르에서 전사

나일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한 영국 해군 제독

1798년 8월 아부키르만에서 청색기 소장으로 영국 함대를 지휘해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을 호송한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다. 프랑스 기함 오리앙이 폭발하고 교전한 17척 중 전열함 2척과 프리깃 2척만이 달아났다.

영국 해군 제독. 1758년 노퍽주 번햄소프의 목사관에서 태어나 삼촌 모리스 서클링의 후원으로 해군에 들어갔고, 서인도와 지중해에서 복무하며 1794년 칼비에서 한쪽 눈을, 1797년 산타크루스데테네리페에서 오른팔을 잃었다. 1798년 8월 1~3일 아부키르만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해 이집트의 나폴레옹 군을 고립시켰고, 1801년 코펜하겐에서 덴마크를 꺾었으며 1805년 트라팔가르에서 전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799년 나폴리 반혁명 진압

1798년 말 나폴리 왕국군이 로마를 되찾은 뒤 프랑스군의 반격으로 붕괴했고, 넬슨은 12월 23일 왕실과 영국인들을 팔레르모로 피난시켰다. 1799년 1월 나폴리에 프랑스군이 들어와 파르테노페아 공화국이 선포되자 그는 여러 달 동안 나폴리를 봉쇄했고, 추기경 루포가 이끄는 반혁명 의용군 산페디스티가 6월 말 도시를 장악했다. 루포는 프랑스로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는 항복 협정을 야코뱅 세력과 맺었으나, 6월 24일 나폴리 앞바다에 도착한 넬슨은 이를 뒤집고 페르디난도 4세를 등에 업고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항복자들은 수송선에 실렸고 넬슨은 그 배들을 나포했으며, 해군 제독 프란체스코 카라치올로는 영국 장교에 의한 재판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고 증인 소환도 허락되지 않은 채 나폴리 왕당파 장교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총살이 아닌 교수형, 준비를 위한 24시간도 거부된 그는 그날 오후 나폴리 프리깃 함 미네르바의 돛대에 매달려 처형됐다. 넬슨은 수백 명을 재판과 처형에 넘기며 관대한 처분을 요청한 해밀턴 부부와 왕비의 청을 물리쳤고, 수송선이 마침내 프랑스로 향했을 때 생존자는 3분의 1에 못 미쳤다. 카라치올로가 공화국의 함대를 지휘하고 영국 함선을 공격한 경위에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그가 왕을 배신했다는 점은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이 진압은 넬슨이 자코뱅 세력에 닥친 재난을 묵인하고 지시한 사례이며, 그가 산페디스티와 다른 반혁명 세력의 무장한 반격과 결합된 장면이었다. 나폴리 골목에는 아직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넬슨은 이 해 8월 13일 시칠리아 왕국 귀족 작위인 브론테 공작위와 옛 수도원 영지를 하사받았고, 같은 해 팔레르모 앞바다 포르투갈 갤리선의 노예 24명을 영국 슬루프로 넘겨받게 하는 데 개입하기도 했다. 이 장면의 반혁명적 성격과 카라치올로에 대한 처분은 이후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