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키 호쓰미

尾崎秀実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일본 일본 1901–1944 ✕ 처형

고노에 총리의 브레인이자 모스크바를 구한 일본인 간첩

나는 공산주의자로서 훌륭하게 죽고 싶다.

오자키 호쓰미는 아사히 신문 기자이자 공산주의자로, 리하르트 조르게의 도쿄 첩보망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본인 정보원이었다. 그는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의 브레인으로서 내각의 최고위급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고, 1941년 9월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고 남방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결정적 정보를 조르게에게 전달해 모스크바 전투의 향방을 바꾸었다. 1941년 10월 체포되어 전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국가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사형 집행 전 감옥에서 아내와 딸에게 보낸 편지는 『사랑은 별비처럼』으로 출간되어 전후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상하이 취재에서 고노에 내각의 정책 자문까지

오자키는 1928년 11월 아사히 신문 특파원으로 상하이에 파견되어 중국 정세를 취재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의 경제적 종속을 영국의 영향력과 연결해 보았으나, 현지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시위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접하면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중국 민족주의에 주목하게 되었다. 상하이에서 중국 공산당원, 좌익 언론인 애그니스 스메들리, 코민테른 관계자들과 접촉했고, 스메들리의 소개로 1930년 리하르트 조르게를 만났다.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을 취재하면서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국 후 도쿄에서 조르게와 다시 연결되었다.

중일 관계에 관한 저술과 분석으로 알려진 오자키는 1937년 고토 류노스케의 추천으로 고노에 후미마로가 세운 쇼와연구회에 들어갔다. 1938년부터는 고노에가 매주 정세를 논의하던 소수 측근 모임인 아침 식사 모임에 참여했다. 그는 정책을 논의하는 내부자로서 동시에 그 정책에 관한 정보를 조르게에게 전달했다. 1941년 7월 2일 정부 중진 회의에서 일본의 팽창 방향이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싱가포르 쪽으로 향하고 소련 공격을 피하는 결정이 지지되었다. 오자키는 이 방향을 지지했고, 조르게에게 일본이 소련과의 전쟁을 피하려 한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이는 일본의 대소 정책에 관한 첩보였지만, 소련군의 시베리아 병력 이동이나 모스크바 전투의 결과를 오자키 한 사람의 정보로 설명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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