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니콜라예비치 로디오노프

Игорь Николаевич Родио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6–2014 ○ 병사

트빌리시 유혈 진압의 작전 명령을 내린 장군

「단 한 명의 시위자도 삽날에 죽지 않았습니다. 소브차크 씨가 그루지야 파시스트들과 함께 지어낸 것입니다」

자카프카스 군관구 사령관 시절인 1989년 4월 9일 트빌리시 루스타벨리 대로에서 독립 요구 집회를 해산하라는 작전 명령을 내려 21명의 민간인 사망을 초래했다. 소브차크 위원회가 로디오노프를 지목했으나, 명령 계통의 위쪽은 야조프 국방장관과 공화국 당 지도부로 이어져 있었고 그는 그 구조 속에서 유일하게 공개 책임을 진 인물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제40군 사령관을 거쳐 1996년 러시아 국방장관에 임명됐으나 예산과 군 개혁 방향을 놓고 옐친 진영과 충돌해 10개월 만에 해임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역 이후의 정치 활동: 퇴역자 조직과 좌파 애국주의 진영(1997~2007)

1997년 5월 국방장관에서 해임된 뒤 로디오노프는 퇴역자 조직을 축으로 정치 활동에 들어갔다. 이미 1994년 5월부터 퇴역군인 단체 '철의 사단' 클럽의 회장, 이후 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었고, 1995년 10월에는 사회운동 '명예와 조국' 평의회 위원이 되었다. 1997년 8월에는 레프 로흘린의 발의로 만들어진 군대·방위산업·군사과학 지원 운동 조직위원회에 참여했으나 같은 해 말 그 활동에서 물러났다.

1999년 12월 19일 로디오노프는 군대 지원 운동이 함께한 КПРФ 선거블록 '승리를 위하여' 명단으로 제3대 국가두마 의원에 당선되었다. 2000년 1월부터 4월까지는 두마 노동·사회정책·퇴역군인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이후 퇴역군인위원회 위원과 КПРФ 교섭단체 의원으로 활동했다. 2002년 2월 23일에는 러시아 인민애국당 의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이 정당은 법무부에 공식 등록되지 않아 '로디나' 블록 참여가 가능해진 측면이 있었다. 영어판 자료는 그를 '로디나' 계열 의원이자 퇴역군인 직업동맹 의장, 두마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으로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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