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르 정부의 농업장관으로 강제 집단화를 밀다가 「종파주의」로 출당된 농민 공산주의자
퇴뢰크센트미클로시의 개혁교회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944년 헝가리 공산당에 들어갔고, 1945년 토지개혁 집행에 참여했다. 신규 토지수령자 연맹과 협동조합 전국연맹을 이끌었고 1951~1952년 국회의장을 지냈다. 1956년 혁명 때는 외국에 있다가 카다르 정부 수립 뒤 돌아와 11월 12일부터 농업을 맡았고 1957~1960년 농업장관을 지냈다. 빠르고 폭력적인 집단화를 주장하다 페헤르 러요시에게 밀려났고, 1962년 출당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4헝가리 공산당 입당
- 1945고향 당 조직 창설과 토지개혁 집행
- 1946–1948신규 토지수령자 전국연맹 서기장
- 1949–1951협동조합 전국연맹 의장
- 1951.05–1952.08국회의장
- 1956.11.12혁명 노농 정부의 농업 담당
- 1957.05–1960.01농업장관
- 1960.02중앙위원회에서 축출
- 1962.01출당
1956년 11월, 외국에서 돌아온 농업장관과 집단화
11월 4일 발표된 헝가리 혁명 노농 정부의 각료 명단은 되게이 임레를 농업장관으로 올렸다. 그러나 정작 그는 혁명 내내 헝가리에 없었다. 그는 10월 15일 이탈리아 농민·소비 협동조합 중앙회의 기념행사에 참석하러 이탈리아로 떠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며칠을 보낸 뒤 카다르 정부가 세워진 다음에야 돌아왔다. 그 뒤로 정부 일에 나서 11월 12일부터 농업을 맡았고, 1957년 5월 9일 정식으로 장관직을 넘겨받아 1960년 1월까지 지켰다.
그는 빠르고 폭력적인 집단화를 지지했고, 그 때문에 더 온건한 방법을 주장한 페헤르 러요시와 부딪쳤다. 갈등은 페헤르의 승리로 끝났다. 되게이는 장관에서 물러나 베이징·하노이 주재 대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했다. 1960년 2월 12일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회가 그의 「종파적이고 반당적인」 견해와 활동을 들어 그를 중앙위원회에서 쫓아냈고, 1962년 1월 9일에는 당에서 제명해 국회의원직도 내놓게 했다. 카다르 시대의 입말에서 「카다르의 작은 짐승들」(Kádár apró dögei)이라는 비아냥이 생긴 데에는 어프로와 그의 성이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