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위기의 무정부주의적 도화선
“거리가 우리를 조직할 것이다.”
이오시프 블레이흐만은 장인 출신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혁명가로, 노동자 조직과 병사 집회에 자신의 정치를 밀어 넣었다. 2월혁명 뒤 페트로그라드 무정부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이 되어 산업의 사회화와 지주 재산의 수탈, 코뮌 건설을 임시정부 밖에서 주장했다. 1917년 7월 3일에는 제1기관총연대에 무장하고 행진하라고 촉구해 위기를 무장한 7월 시위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이 운동은 볼셰비키 지도부가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10월 뒤에는 구체제에 맞선 혁명을 지지하면서도 볼셰비키 국가를 비판했고, 그 결과 거듭된 체포와 강제노동, 병을 겪다가 1921년에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7혁명운동 참가
- 1904미국에서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수용
- 1906드빈스크 무정부주의 그룹 조직
- 1913–1914페테르부르크 노동조합 선동가
- 1917페트로그라드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자연맹 서기·《코뮌》 편집자
- 19177월 시위 때 제1기관총연대 선동가
- 1917–1919페트로그라드 무정부주의 그룹연맹 서기
- 1920–1921모스크바 노동조합 평의회 활동가, 체포되어 강제노동
관련 역사 사건
혁명 이전의 형성: 직공에서 무정부주의자로
블레이흐만은 1868년생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1874년생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사료마다 출생 연도가 갈리므로 확정하기 어렵다. 출생지는 러시아 제국 코벤현 노보알렉산드롭스크군 비드지로, 오늘날의 벨라루스에 해당한다. 그는 소상인 집안 출신으로 구두 수선공과 양철공으로 일했다.
1897년부터 혁명 운동에 참여했고 곧 미국으로 이주해 1904년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06년 러시아 제국으로 돌아와 드빈스크(다우가프필스)에서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만들었고, 1913년 9월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이어 1914년 7월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단사·제빵공·피혁공 노동조합을 상대로 무정부주의 선전을 벌였다.
그는 노동자 조직을 자신의 정치를 밀어 넣는 장으로 삼았고, 이 시기의 조합 활동이 이후 페트로그라드에서의 활동 기반이 되었다. 1914년 7월 노동자 소요 와중에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으나, 한 기록은 그가 탈출해 비합법 신분으로 지냈다고 하고 다른 기록은 2월혁명으로 석방되었다고 전한다. 시베리아에서의 조건은 그에게 결핵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