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슈코바의 예비 우주비행사, 카마닌이 신체적 최고라 했지만 대중역할엔 내성적이었던 낙하산 국가대표
「우리는 해볼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비밀경찰로부터 우주비행사단 입단 제의를 받고, 약혼자와 함께 단골 카페에서 문 닫을 때까지 고민한 끝에.
우랄 공과대학을 졸업한 기계공학자이자 국가대표 낙하산 선수로, 1962년 소련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단 5인에 선발되었다. 1963년 보스토크 6호 비행에서 발렌티나 테레슈코바의 주예비 비행사로 훈련받았으며, 니콜라이 카마닌은 그녀를 신체적으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했으나 대외 선전에 필요한 외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포노마료바와 함께 보스호트 계획 최초 여성 우주유영 임무를 준비했으나 계획 취소로 무산되었고, 1969년 여성 비행사단 해체 후 우주비행사훈련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심리학 후보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4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54–59우랄 공과대학 건설학부 졸업, 기계공학 전공
- 1955–62국가대표 낙하산 선수, 스포츠 마스터(1959), 약 700회 강하
- 1959–62우랄에네르고몬타주 설계국 엔지니어
- 1962.3여성 우주비행사단 선발, 우주비행사 훈련 이수
- 1963.5보스토크 6호 테레슈코바의 주예비 비행사
- 1964–67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 졸업, 조종사-우주비행사-기사 자격
- 1966포노마료바와 보스호트 여성 우주유영 임무 훈련 (취소)
- 1969–91우주비행사훈련센터 연구원·선임연구원, 심리학 후보학위(1980), 대령 퇴역
관련 역사 사건
극지 원정대 «메텔리차»
1969년 여성 비행사단이 해체되고 우주비행사훈련센터 연구원으로 옮긴 뒤, 솔로비요바의 활동 무대는 극지로 넓어졌다. 1974년부터 그녀는 1966년 발렌티나 쿠즈네초바가 창설한 여성 극지 원정대 «메텔리차»에 참여했다. 이 팀은 스키와 자력 교통으로 고위도 지방을 횡단하는 자율 원정을 수행했으며, 솔로비요바는 대원들의 심리 상태를 관리하는 심리학자 겸 원정대 부지휘자로 일했다. 프란츠요세프 제도와 타이미르 반도 동부를 향한 스키 원정에 참가했고, 이 경험은 우주비행사 훈련에서 쌓은 극한 환경 심리학 연구와 맞물렸다. 팀의 원정 기록은 1974년 할메르유에서 아므데르마까지, 1975년 타이미르 동해안, 1977년과 1979년 프란츠요세프 제도, 1988~1989년 남극 대륙(몰로됴즈나야 기지에서 미르니, 보스토크 기지를 잇는 1,420km 스키 행군), 1995년 부빙 위를 지나 북극점을 향한 행군으로 이어졌다. 원정대의 창설자이자 지휘자였던 쿠즈네초바와 함께 솔로비요바는 2011년 «지구의 극지에서 만난 «메텔리차»»를 공동 집필했고, 이 책은 팀의 40여 년 연구·탐험 기록을 담았다. 같은 해 쿠즈네초바를 기리는 스키 행사가 처음 열려 이후 매년 2월 모스크바에서 계속되었다. 이로써 우주비행사 후보로 좌절한 경력은 극지 탐험과 심리학 연구라는 또 하나의 축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