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크라가 가장 신뢰한 노동자 조직가, 볼셰비키 노동자 전형의 원형
1902년, 알렉산드롭스크 감옥 창살을 톱으로 잘라 탈옥한 그는 외국어 하나 모르는 채 런던으로 향했다. '이스크라' 편집부와 당면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레닌의 노동자 서클에서 성장한 혁명가. 《이스크라》 특파원으로 오레호보-보고로츠크 조직을 건설했고 체포·유형·탈옥을 거듭했다. 1905년 치타 무장봉기를 지도했고 이듬해 무기 호송 중 체포·총살당했다.
경력 연표
- 1887–91크론슈타트 어뢰 작업장 견습공
- 1891–96페테르부르크 세먀니코프 공장 기계공
- 1894–95레닌의 노동자 마르크스주의 서클 참여, '투쟁동맹'에서 서클·도서관 조직
- 1896–97체포, 예카테리노슬라프 유형 ― 현지 '투쟁동맹'·RSDDP 위원회·《유즈니 라보치》 창간
- 1900–01《이스크라》 특파원·배포책 ― 오레호보-보고로츠크 RSDDP 조직 건설
- 1902–03체포·탈옥·런던 망명·귀국. 재체포 후 베르호얀스크 유형
- 1905사면, 이르쿠츠크·치타 위원 ― 《자바이칼스키 라보치》 편집, 치타 무장봉기 지도
- 1906.1무기 호송 중 슬류뎬카 역 체포, 미소바야 역에서 즉결 총살
관련 역사 사건
레닌의 바부시킨 — 노동자 정당의 증거
1910년 12월, 레닌은 바부시킨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듣고 《라보차야 가제타》에 긴 추도문을 발표했다. 그는 바부시킨을 "당의 자랑, 노동자 대의에 평생을 무보수로 바친 동지"라고 불렀다. 이 글은 단순한 애도의 차원을 넘어, 볼셰비키의 정당론을 압축한 정치선언이었다.
레닌의 추도문은 당시 러시아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퍼뜨리던 주장("RSDDP는 지식인의 당일 뿐이며 노동자는 거기에 끼지 못했다"는)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이바나 바실리예비치 바부시킨의 전기, 이 노동자-이스크라주의자의 10년 사회민주주의 활동은 자유주의적 거짓말을 눈으로 보듯 반박한다." 레닌은 바부시킨이 혁명 10년 전부터 노동자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만들어온 "노동자 선진분자" 중 하나라고 단언했다. "이런 선진분자들이 프롤레타리아 대중 속에서 지칠 줄 모르고 영웅적으로 집요하게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RSDDP는 10개월은 고사하고 10일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레닌은 나아가 생전의 입헌민주당(카데트) 의장 무롬체프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현실을 조롱하며, 진정한 국민적 영웅은 바부시킨 같은 노동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러시아 국민은 영원히 노예와 예속민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러시아 국민은 모든 착취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쟁취할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바부시킨 개인을 넘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마르크스주의 핵심 명제를 요약하는 동시에, 볼셰비키 정당이 바로 그 노동자 전위의 조직적 표현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바부시킨은 레닌의 정치적 논증 속에서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그는 당을 외부에서 지도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당을 자신의 살과 피로 창건한 노동자였다. 레닌의 추도문은 이후 소비에트 역사서술에서 바부시킨이 정전화되는 출발점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마을·거리·공장·도서관·광산촌·선박·다이아몬드에까지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