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의 측근으로 20년 가까이 몰도바를 통치한 공화국 제1서기
모스크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이온 드루처에 대해, 보듈은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가 고향에 돌아오면 첫 번째 가로등에 목을 매달아주겠다."
몰도바 공산당 제1서기로 20년 가까이 재임한, 소련 공화국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자 중 하나다. 브레즈네프의 측근으로서 농업 공화국이었던 몰도바에 기계제조·전자·식품가공 등 신산업을 도입하고 유럽 최대 규모의 과수원과 축산단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어 억제, 교회 폐쇄 등 강압적 러시아화를 추진했으며, 작가 이온 드루처에게 '고향에 돌아오면 첫 가로등에 매달겠다'고 위협했다. 1980년 소련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전임되었고, 퇴임 후인 2003년 몰도바 공화국 훈장 수여는 작가 8명의 훈장 반납을 촉발했다.
경력 연표
- 1937–1938콜호즈 수석 농업기사
- 1942–1946붉은군대 수의장교 (제127근위포병연대 → 제59근위소총사단 → 제10근위소총군단)
- 1946–1951몰도바 SSR 각료회의 농업 담당 보좌관·감사관
- 1951–1956키시뇨프·볼론티롭카·올라네슈티 지역당위 제1서기
- 1956–1959CPSU 중앙위 고등당학교 수료 후 중앙위 조직당업무부 지도원
- 1959–1961몰도바 공산당 중앙위 제2서기
- 1961–1980몰도바 공산당 중앙위 제1서기
- 1980–1985소비에트연방 각료회의 부의장
관련 역사 사건
몰도바 민족 문제와 루마니아 관계
보듈의 통치기 몰도바 민족 문제는 소련 내에서도 특히 첨예했다. 그는 '몰도바인'을 루마니아인과 별개의 독자적 민족으로 규정하는 소련의 공식 민족 담론을 강경하게 수호했다. 1966년 7월, 루마니아 공산당 기관지 『스큰테이아』(Scînteia)에 몰도바인의 기원과 루마니아와의 역사적 통일성을 주장하는 기사가 실리자, 보듈은 CPSU 중앙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몰도바 민족과 루마니아 민족은 서로 다른 영토에서,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독립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선언하고, "몰도바 민족은 서방 국가들, 주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반면 루마니아 민족은 다른 경로를 밟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러시아어와 루마니아어 양 언어로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학술 작업을 준비할 것을 권고했다.
1976년에는 몰도바 SSR 지도자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사라비아 병합 이후 처음으로 루마니아를 공식 방문했다. 8월 국경에서 차우셰스쿠 부부를 직접 맞이해 키시뇨프까지 수행했으며, 12월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회담에서 "차우셰스쿠의 소비에트 몰도바 방문이 접촉과 교류의 확대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보듈의 몰도바 국내 정책은 키릴 문자 고수, 라틴 문자 요구 탄압, 루마니아어 사용 억제로 일관되었다. 1980년 그가 퇴임하던 해 개정된 몰도바 SSR 국가는 러시아어·몰도바어 가사 모두에서 루마니아를 완전히 배제하고 소련적 정체성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