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든 혁명 시인, 마차 속 가족을 보고 폭탄을 거둔 '윤리적 테러리스트'
재판에서 판사들에게: "나는 피고가 아니라 당신들의 포로다. 우리는 두 진영이다. 전진하는 혁명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라."
사회혁명당 전투조직원이자 시인으로, 1905년 2월 4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차르의 숙부 세르게이 대공을 폭탄으로 암살한 인물. 이틀 전, 대공의 아내와 어린 조카들이 마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 폭탄 투척을 멈춘 그의 행동은 '윤리적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낳았고, 알베르 카뮈의 희곡 『정의의 사람들』의 모델이 되었다. 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에서 활동하다 사회민주당의 점진주의에 실망하여 SR 전투조직에 합류했으며, 플레베 암살 감시에도 참여했다. 재판에서 '전진하는 혁명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라'고 법정에 선언한 후 슐리셀부르크 요새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7–1899모스크바 및 페테르부르크 대학 수학; 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 가입 (1898)
- 1899학생 파업 주도로 예카테리노슬라프 유배
- 1902베를린에서 혁명 문헌 운반 중 체포, 러시아로 송환되어 야로슬라블 유배
- 1903제네바에서 SR 전투조직 가입 (아제프 휘하)
- 1904플레베 내무장관 암살 작전 감시팀 참여
- 1905.2.4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세르게이 대공 폭탄 암살
- 1905.4.5원로원 특별재판에서 전제정치 고발 연설, 사형 선고
- 1905.5.23슐리셀부르크 요새 교수형 집행
관련 역사 사건
시인 '포엣': 문학 활동과 사후 출간
칼랴예프는 당 안에서 본명 대신 '포엣(Поэт)', 곧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시와 산문을 남긴 문학인이었고, 1902년 야로슬라블 유배지에서는 알렉세이 레미조프와 함께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의 산문시를 러시아어로 옮겼다. 유배지에서 그는 사회혁명당원이자 작가인 보리스 사빈코프, 레미조프와 가까워졌고, 이 무렵 정치 테러만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문학과 테러라는 두 얼굴은 그에게서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