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통제 기관에서 미술관으로 간 볼셰비키
11세에 마을을 떠나 그림 도제가 되었고, 16세에 성상화가 밑에서 이콘을 그렸다. 그로부터 20년 뒤, 같은 손으로 당 중앙기구의 간부 명단을 쥐었다.
블라디미르 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도제로 나가 성상화가 기술을 익혔고, 1905년 20세에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내전 후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지역 당 조직을 이끌었고, 1923년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에 올라 스탈린의 당 기구 강화 초기 단계에서 간부 임명 라인을 관리했으며, 오르그뷰로 후보위원도 지냈다. 이후 15년간 중앙통제위원회와 당통제위원회에서 근무하며 대숙청기의 당 기구 숙청 작업에도 관여했고, 1939년 한동안 직위에서 배제된 뒤 푸시킨 미술관 관장으로 자리를 옮겨 1944년 은퇴할 때까지 박물관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8 사회운동·조직 · 소련 · 당 서기국 · 조직인사
경력 연표
- 1905RSDRP 입당,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에서 1905-07년 혁명 참여
- 1913–16체포 및 유형
- 1917야로슬라블 RSDRP(b) 위원회 위원
- 1918–21테이코보 현 당위원장·집행위원장,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현 집행위 부위원장, 이후 현 당위 서기
- 1922–24RKP(b) 중앙위원
- 1923–24중앙위 조직지도부장, 오르그뷰로 후보위원
- 1924–34중앙통제위원회 간부위원
- 1934–39당통제위원회 위원
- 1939–44푸시킨 국립미술관 관장
- 1944은퇴
관련 역사 사건
전시와 퇴각: 1939~1944년 푸시킨 미술관 관장
1939년 몇 달간 직위에서 물러나 있던 코롯코프는 그해 푸시킨 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자리를 1944년까지 지켰지만, 그 기간은 연속되지 않았다. 미술관 자체의 관장 명단에 따르면 그는 1939~1941년과 1942~1944년의 두 차례에 걸쳐 관장을 맡았고, 그 사이인 1941~1942년에는 미술사가 베라 니콜라예브나 크릴로바가 관장 대리를 맡았다.
이 시기는 독소전쟁과 겹친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술관 소장품은 노보시비르스크와 솔리캄스크로 퇴각 조치되었다. 모스크바 공방전 중에 미술관 건물은 폭격으로 크게 파손되었고, 재건은 1944년에 시작되어 여러 해 동안 이어졌다. 코롯코프 본인도 얼마 동안 소장품이 피난해 있던 노보시비르스크에 머물렀으며, 전후 모스크바로 돌아와 살았다.
이 경력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관장으로 임명된 것이 미술 전문성보다는 당 간부로서의 이력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임기가 전시 상황에 따라 두 토막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이다. 미술관은 1944년 코롯코프의 퇴임 후 세르게이 메르쿠로프가 이끌어, 1946년 10월 3일 전후 첫 상설 전시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