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 최고 격추 기록의 소련 전투기 에이스
「단련되지 않은 용기는 빈 총알일 뿐이다」 — 『조국에 대한 충성』에서.
64대를 격추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최고의 전투기 에이스로, 330회 출격·120회 공중전을 치르며 단 한 번도 격추되지 않았다. 200~300미터까지 접근해 명중시키는 저격술이 트레이드마크였고, 1945년 2월에는 소련 조종사 최초로 Me-262 제트전투기를 격추했다. 한국전쟁에서는 제324전투항공사단장으로 직접 출격이 금지되었으나, 휘하 조종사들이 216대를 격추하고 27대를 손실하는 탁월한 교환비를 기록했다. 모스크바 군관구 공군 부사령관(1964~1971)을 거쳐 1985년 항공원수로 진급했으며, 1990년 소련 인민대표대회에서 군대 비방을 규탄하는 '영웅들의 호소문'을 낭독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0–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40붉은군대 입대, 추후예프 군사항공학교 졸업 후 교관
- 1943–1945제240전투항공연대 조종사 → 중대장 → 제176근위전투항공연대 부연대장. 64기 격추, 세 차례 소비에트연방영웅
- 1949공군사관학교(모니노) 졸업
- 1951–1952제324전투항공사단장, 한국전쟁 참전 (암호명 '크릴로프')
- 1956보로실로프 고등군사아카데미 졸업
- 1964–1971모스크바 군관구 공군 제1부사령관
- 1971–1978공군 전투훈련총국 제1부국장
- 1985항공원수 진급
관련 역사 사건
농촌 소년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전선 배치 이전
코제두프는 1920년 6월 8일 체르니고프 현 글루호프 우예즈드 오브라지예프카 마을에서 농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회의 재산 관리 책임자였다. 이 마을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미주 쇼스트카 구에 속하며, 전기 서술은 그를 우크라이나인으로 적는다. 1934년 고향에서 7년제 학교를 마친 뒤 쇼스트카에서 노동자 청년 학교에서 2년을 더 다녔고, 1936년 같은 곳 화학기술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무렵 그가 도서관에서도 일했다고 전한다. 항공과의 첫 인연은 1938년 가을 입학한 쇼스트카 항공클럽이었다.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1939년 가을 클럽 과정을 마쳤으나 전문학교는 끝내 졸업하지 못했는데, 졸업을 반년 앞둔 1940년 1월 군사학교 소집 통지를 받고 붉은군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추구예프 군사항공조종사학교에서 UT-2·UTI-4·I-16을 익혔고, 이 학교 졸업 시점은 사료가 엇갈린다. 러시아어 위키백과는 1940년 가을, 영어 위키백과는 1941년 1월로 적는다. 졸업 뒤 그는 학교에 남아 교관으로 조종사를 양성했다. 독일의 침공으로 학교가 카자흐스탄 침켄트로 옮겨진 뒤에도 그곳에서 전선에 보낼 조종사를 계속 훈련시켰다. 1942년 11월 이바노보에서 편성 중이던 제240전투항공연대에 배속되었고, 1943년 3월 사단과 함께 보로네주 전선으로 갔다. 이 시기는 격추 기록 이전의 시기로, 그가 농촌의 소년에서 교관을 거쳐 전투기 조종사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