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알렉세예비치 리하초프

Иван Алексеевич Лихачёв
소련 러시아 1896–1956 ○ 자연사

소련 자동차 공업의 아버지, 포드에게 '나는 인민의 하인'이라고 말한 붉은 디렉터

1930년 헨리 포드와의 오찬에서: "나는 공업자가 아니라 인민의 하인입니다. 디렉터 자리는 세습이 아닌 우리 당의 의지로 받은 것입니다."

툴라 농민의 아들로 푸틸로프 공장 견습공에서 출발해 소련 자동차 대량생산 체제를 세운 산업 조직자. 1926년 모스크바 자동차 공장(AMO, 후일 ZIS) 디렉터로 부임해 낙후된 소규모 공장을 유럽 최대 자동차 생산기지로 키웠고 소련 최초의 컨베이어 조립을 도입했다. 대조국전쟁 중 공장을 동부로 대피시켜 4개 도시에 새 공장을 세우면서도 전선에 트럭과 무기를 끊임없이 공급했으며, 1949년 생산 중단 없는 신모델 전환 공법으로 스탈린상을 받았다. 사후 그가 키운 공장은 ZIL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AMO에서 ZIS로: 소련식 대량생산의 탄생

리하초프가 1926년 12월 31일 AMO의 디렉터로 부임했을 때 공장의 실상은 참담했다. 전년도에 피아트 라이선스 트럭 AMO-Ф-15를 113대 생산한 것이 전부였고, 철판과 석탄은 만성적으로 부족했으며 조립은 사실상 수공업이었다. 30세의 신임 디렉터는 당원 면접에서 "교육은 시골 학교뿐이지만 자동차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했고,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았다.

1927년 시작된 1차 재건으로 생산량은 연 1,000대까지 올랐으나, 급속한 공업화가 요구하는 목표치는 25,000대였다. 리하초프는 독일(다임러-벤츠, 오펠)과 미국을 방문했고, 헨리 포드의 초청으로 디어본 공장을 견학하며 직접 일주일 동안 컨베이어 라인에서 일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31년 소련 최초의 자동차 조립 컨베이어를 AMO에 도입했다. 미국 오토카(Autocar-5S)의 라이선스를 들여와 AMO-2로 생산을 시작했고, 소련의 도로와 기후에 맞춰 설계를 대폭 수정한 AMO-3를 거쳐 1933년 전설적인 트럭 ZIS-5를 탄생시켰다.

리하초프는 평생 세 차례 공장을 전면 재건했고, 기술 잡지를 늘 탐독했으며 부하 직원들에게도 교사를 붙여 교육을 강권했다. 작업복 차림으로 매일 공장을 돌며 노동자들의 이름을 외웠고, 바닥에 떨어진 부품을 직접 주워 품질관리과로 가져갈 정도로 현장에 밀착했다. 1934년에는 하루 65대를 생산하는 유럽 최대 자동차 공장이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리하초프는 자신을 '인민의 하인'이라 부르며, 자본가와 다른 소비에트 '붉은 디렉터'의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구축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