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테렌티예비치 페레시프킨

Иван Терентьевич Пересыпк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4–1978 ○ 자연사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를 연결한 통신의 설계자, 최초의 통신병과 원수

1941년 7월 22일 밤, 스탈린은 가피치 장군을 면전에서 해임한 뒤 페레시프킨에게 말했다: 「당신을 통신총국장으로 임명합니다. 체신인민위원직은 그대로 유지하시오.」 묻지도 않은 채 그는 국방부인민위원까지 겸하게 되었다.

수은 광부의 아들로 도네츠크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붉은 군대에 입대해 남부전선에서 내전을 치렀다. 키예프 군사정치학교와 붉은 군대 전기공학 아카데미를 거쳐 통신병과 장교로 성장했고, 1939년 불과 35세에 소련 체신인민위원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전쟁 한 달째인 1941년 7월 22일, 스탈린은 그를 국방부인민위원과 붉은 군대 통신총국장에 추가 임명해 전시 민간·군사 통신을 한 사람에게 맡겼다. 그는 24차례 전선을 직접 방문하며 모스크바·스탈린그라드·쿠르스크에서 스타프카와 야전군 사이의 안정적 통신을 보장했고, 1944년 39세의 나이로 사상 첫 통신병과 원수 계급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후·말년: 지휘직에서 물러난 뒤의 군사과학·저술 활동

전쟁이 끝난 뒤에도 페레시프킨은 통신병과의 책임자로 남았다.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육군 통신병과 사령관을 지냈고, 1956년에 중병을 앓은 뒤 1957년 1월 그 직에서 해임되어 국방부장관 예하에 배속되었다. 이후 국방부 차관의 과학고문을 맡았고, 1958년 4월부터는 국방부 감찰총감단의 군사감찰고문으로 일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그는 소련 라디오스포츠연맹 의장과 A. S. 포포프 명칭 무선공학·전자공학·통신 과학기술협회 역사위원회 의장을 맡아 조직 활동을 계속했으며, 통신의 역사와 현안을 다룬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1946년 『국가 방위에 복무하는 라디오』를 시작으로 1972년 『위대한 조국전쟁의 통신병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968년부터 1978년까지 『군사역사잡지』에 기고한 드네프르 도하, 스탈린그라드 전투, 만주 작전 등에 관한 일련의 논문은 그가 전장에서 쌓은 경험을 사료 연구로 옮긴 결과물이다. 1978년 10월 12일 사망했고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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