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예피모비치 페트로프

Иван Ефимович Петр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96–1958 ○ 자연사

오데사·세바스토폴을 지키고 두 번 강등당해도 다시 전선에 선 육군대장

세바스토폴 함락 직전, 도시의 수비병들을 구하지 못한 절망에 페트로프는 권총을 들어 자결하려 했다. 장교들이 달려들어 그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았다. 그는 잠수함으로 철수한 뒤 다시 전선으로 돌아갔다.

이반 페트로프는 대조국전쟁 최대의 방어전 두 곳인 오데사(1941)와 세바스토폴(1941~1942)을 지휘한 소련군 대장이다. 중앙아시아 바스마치 토벌로 군 경력을 쌓았고, 프리모르스크 군 사령관으로 흑해 방어전을 이끌었다. 북캅카스 전선군 사령관으로 타만 반도와 케르치-엘티겐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으며, 제2벨로루시·제4우크라이나 전선군을 지휘해 카르파티아를 넘었다.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 참모장으로 베를린·프라하 작전을 수행해 소련영웅이 되었다. 메흘리스와 스탈린에 의해 두 차례 강등되었으나 매번 재기용될 만큼 대체 불가능한 작전 능력을 지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후 남부 근무와 아슈하바트의 비극

종전 직후 페트로프는 다시 남부로 향했다. 1945년 7월 9일부터 투르키스탄 군관구 사령관을 맡아, 1920년대 바스마치 토벌로 군 경력을 시작했던 바로 그 지역을 전후에 다시 관할했다. 1952년 7월에는 소련군 총감찰부 제1차장, 1953년 4월에는 국방부 전투·체력훈련 총국장, 1955년 3월에는 지상군 총사령관 제1부총사령관, 1956년 1월에는 국방부 총감찰관으로 옮겼다. 1957년 6월부터는 국방부 차관 직속 고문으로 일했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제2~4기 소련 최고소비에트 대의원을 지냈다.

1948년 10월 6일 밤 아슈하바트 지진이 덮쳤다. 이 재난로 페트로프의 아들인 소련군 중령 유리 이바노비치 페트로프가 약탈자에게 총에 맞아 죽었다.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의 죽음을 여러 번 지켜봐야 했던 그는 전후에도 개인적 상실을 피하지 못했다.

페트로프는 회고록을 쓰지 못한 채 1958년 4월 7일 사망했고,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되었다. 다만 세바스토폴 방어에 관한 첫 군사사 논고를 남겼으며, 콘스탄틴 시모노프의 요청으로 오데사 방어 참전에 관한 짧은 글을 써 주었는데 이 글은 페트로프 사후에 출판되었다. 트루브체프스크와 세바스토폴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오데사·세바스토폴·케르치·타슈켄트·트루브체프스크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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