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바실리예비치 스피리도노프

Иван Васильевич Спиридо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91 ○ 자연사

흐루쇼프 시대의 레닌그라드 당 수장, 스탈린 시신 이장을 제안하고 당 기구의 충성 시험에 걸려 넘어진 인물

중앙위 간부회의에서 흐루쇼프가 사임 의사를 내비치자 침묵이 흘렀다. 스피리도노프가 일어나 "동지들, 니키타 세르게예비치의 바람을 지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흐루쇼프의 얼굴이 굳었고 며칠 뒤 그는 모든 당직을 잃었다.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야간 공업학교를 마친 후 공장 노동자로 출발해 레닌그라드에서 기업 간부로 성장한 소련의 당·국가 지도자이다. 1957년 프롤 코즐로프의 후임으로 레닌그라드 지역당 제1서기에 올라 대규모 주택 건설(소위 '흐루쇼프카')과 과학·방위 산업 단지 확장을 주도했다. 1961년 제22차 당대회에서 레닌그라드 대표단장으로서 스탈린 시신의 레닌 묘역 이장을 공식 제안해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를 극적으로 추동했다. 곧 중앙위원회 서기로 발탁되었으나, 중앙위 간부회의에서 흐루쇼프의 위장 사임 제의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실수를 범해 실각, 1962년부터 1970년까지 연방회의 의장이라는 의전적 직책으로 밀려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레닌그라드의 주택·과학 기반 확충

1957년 12월 레닌그라드주당 제1서기가 된 뒤 스피리도노프는 주택 공급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재임 중 값싼 표준주택 설계가 마련되고 대형 건설 트러스트들이 조직되어 주거지 전체를 묶어 개발했다. 이 사업은 주거 부족에 대응해 대량 건설을 추진했지만, 표준 설계는 편의성이 제한된 주택을 낳았다. 모스크바-레닌그라드 고속도로의 전 구간 통행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의 지역 지도부 시기에는 페소치니, 크라스노예 셀로, 가치나, 키롭스크 등에서 과학도시 건설이 시작되었고 레닌그라드의 과학기술 기반이 확대되었다. 기초과학 연구의 발전은 방위산업을 뒷받침했으며, 방위산업 기업들은 지역 산업 구조와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스피리도노프는 1962년 5월 레닌그라드주당 제1서기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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