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폭풍 작전의 태평양함대 사령관, 스탈린에게 '장관감이 못 된다' 일갈당한 해군원수
1951년 7월 해군 주력군사평의회에서 스탈린은 유마셰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깨끗하고 용감하며 훌륭한 선원이지만, 장관이 아니다. 모든 일을 보좌관에게 맡기고 권력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짜르 해군의 수병으로 출발하여 소련 해군 최고위에 오른 제독. 1939년부터 태평양함대를 지휘하며 극동의 해군 기지를 정비했고, 1945년 8월 대일전에서 함대를 이끌어 남사할린·쿠릴 열도 상륙과 조선 북부 해안의 청진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소련영웅 칭호를 받았다. 1947년 쿠즈네초프의 뒤를 이어 해군총사령관이 되었고 1950년 해군장관에 올랐으나, 스탈린은 그가 실무를 보좌관에게 넘기고 음주에 빠져 있다며 '사람은 좋지만 장관이 아니다'라고 평가하며 1951년 경질했다. 이후 해군아카데미 교장으로 물러나 함대보다 교실을 지켰다.
경력 연표
- 1912발트함대 크론슈타트 소년병학교 입교, 순양함 보가티리에서 복무
- 1917레발 해안포대 수병위원회 위원장, 혁명 후 질병으로 제대
- 1918–1920입당 및 붉은의용대 지휘관, 볼가-카스피 소함대에서 내전 참전
- 1920–1924전함 페트로파블롭스크(후일 마라트) 포술지휘관·부함장
- 1926–1937흑해함대: 구축함·순양함 지휘, 구축함대·순양함여단장
- 1938.01–1939.03흑해함대 사령관
- 1939.03–1947.01태평양함대 사령관, 대일전 승리로 소련영웅 칭호(1945)
- 1947.01–1950.02군무차관 겸 해군총사령관
- 1950.02–1951.07소련 해군장관
- 1951–1957보로실로프 해군아카데미 교장
관련 역사 사건
1945년 대일전: 8월 폭풍 작전
유마셰프가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서 가장 빛난 순간은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면서 시작된 만주 전략공세작전, 이른바 '8월 폭풍' 작전이었다. 1939년부터 6년간 함대를 지휘하며 극동의 해군 기지와 비행장, 해안 방어 시설을 정비해온 유마셰프는 개전과 동시에 함대를 출동시켜 제1·제2극동전선군의 진격을 해상에서 지원했다.
태평양함대는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에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유마셰프는 조선 북부 해안의 청진 상륙작전(세이신 작전)도 진두지휘했다. 이 작전들은 관동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일본 본토와의 해상 연결을 끊는 데 결정적이었다. 함대는 또한 수송로를 확보하고 적 해군 기지를 무력화하는 임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이 공로로 유마셰프는 1945년 9월 14일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와 금성훈장, 레닌훈장을 받았다. 표창장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태평양함대 부대 및 함정의 전투 작전 지도에 있어 최고사령부의 임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 달성된 성과'를 기렸다. 전후 유마셰프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회고록 「조국을 위한 전투에서의 태평양함대」(1976)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