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르 라술로비치 라술로프

Джабар Расулович Расул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타지키스탄 1913–1982 ○ 자연사

21년간 타지키스탄을 이끈 농학자 출신 지도자, 검소와 청렴의 공산주의자

라술로프 사후 금고를 열자 저축 통장에 4,200루블과 수년치 개인 경비 영수증 뭉치가 나왔다. 보좌관은 '자동차 한 대 값도 안 되는 돈으로 21년간 공화국을 다스렸다'고 회고했다.

후잔트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타슈켄트 중앙아시아면화대학을 졸업한 농학자다. 바흐시 계곡 개간에서 출발해 타지크 SSR 농업인민위원(1941~1945)과 각료회의 의장(1946~1955)을 지내며 전후 복구를 지휘했고, 소련 농업부 제1차관과 초대 주토고 대사를 역임한 뒤 1961년 4월 타지크 공산당 제1서기에 올라 사망까지 21년간 공화국을 이끌었다. 재임기 누레크 수력발전소, 알루미늄 제련소 등 400여 개 공업 기업이 세워져 농업 중심 구조가 다부문 산업 구조로 전환했다. 9개 레닌 훈장을 받았으나 평생 양복 두 벌만 소유하고 출장에 도시락을 싸 다닌 청렴한 인물로 동시대인의 기억에 남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당 간부의 장기 집권과 소비에트 안정화

1961년 투르순 울자바예프가 면화 생산 실적을 부풀렸다는 혐의와 레닌오보드 출신 측근을 우대했다는 문제로 축출된 뒤, 농업 관료 출신인 라술로프가 타지키스탄 공산당 제1서기로 교체되었다. 그는 브레즈네프 시기의 간부 안정화 정책 아래 장기간 자리를 지켰으며, 1982년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전후 타지키스탄에서 제1서기들은 모두 레닌오보드 출신이었고, 지역 연고와 당 권력이 긴밀히 연결되었다. 레닌오보드 계열이 우세했지만 다른 주의 동맹 세력도 권력의 일부를 나누어 가졌다. 따라서 라술로프의 장기 재임은 개인의 경력만이 아니라 지역 연계와 간부 연속성에 기반한 공화국 정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후임 라흐몬 나비예프도 농업 관료 경력을 가진 브레즈네프식 정치 간부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