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데 봉기의 첫 총사령관
앙주 지방의 행상인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1793년 징병 반대 봉기에 가담했다. 여러 농민 부대를 결집시키며 가톨릭 왕당군의 첫 총사령관으로 선출됐다. 낭트 공격에서 입은 총상으로 사망했다.
혁명기의 선택과 정치적 맥락
카틀리노의 지도력은 방데 봉기를 귀족이 농민을 일방적으로 지휘한 반혁명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그는 앙주의 행상인이었고, 징병·종교·지역 질서에 대한 불만이 결합한 농민 동원 속에서 총사령관으로 선출됐다. 가톨릭 왕당군이라는 이름은 종교와 왕정이 결합한 상징을 보여 주지만, 참여자의 동기와 지역적 조건은 하나가 아니었다.
1793년의 방데전쟁은 공화국이 대외전쟁과 내전을 동시에 치른 배경이었다. 카틀리노의 죽음 뒤에도 전쟁은 계속됐고, 양쪽의 폭력과 보복은 지역 사회에 큰 파괴를 남겼다. 그를 단순한 종교적 영웅 또는 왕당파 도구로만 그리면 이 다층적인 사회적 갈등을 놓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