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티스트 카리에

Jean-Baptiste Carrier

낭트 익사형을 명령한 국민공회 파견의원

1756년 오리야크 근처 욜레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소송대리인이 되었고, 혁명이 일어나자 국민방위대와 자코뱅 클럽에 들어갔다. 1792년 캉탈 선출 국민공회 의원으로 코르들리에와 자코뱅의 연설가였고 루이 16세 처형에 찬성했으며 지롱드파 축출에 가담했다. 1793년 가을 낭트에 파견되어 갈레른 행군에서 잡힌 포로가 쌓이자 12월부터 1794년 2월까지 바닥에 구멍을 낸 배로 루아르강에 가라앉히는 익사형과 집단 총살로 감옥을 비웠다. 그가 「수직 유배」라 부른 익사형으로 1,800~4,800명, 총살로 2,600명이 죽었다. 1794년 2월 소환된 뒤 튀로의 방침을 옹호했고 테르미도르에 가담했으나 낭트 혁명위원회 재판에서 기소되어 12월 16일 단두대에 올랐다.

다른 이름: 장바티스트 카리에르 · 장 바티스트 카리에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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