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티스트 밀리에르

Jean-Baptiste Millière
독립 활동 1817–1871 ✕ 즉결 총살

쥘 파브르의 문서 위조를 폭로하고 피의 주간에 팡테옹 앞에서 총살된 사회주의 언론인·국민의회 의원

1817년 라마르슈쉬르손에서 통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디종에서 법학 박사가 되었다. 사회주의자로서 1848년 혁명 뒤 클레르몽페랑에서 신문을 내다 1850년 쫓겨났고, 1851년 쿠데타에 맞서다 알제리 유형을 선고받았다. 1859년 사면으로 돌아왔고, 1869년 《라 마르세예즈》의 편집인 겸 관리인이 되었다. 파리 포위 중 국민방위군 대대를 지휘하며 10월 31일 봉기에 가담했다. 1871년 2월 8일 쥘 파브르의 문서 위조 증거를 신문에 실었고, 같은 날 센 도 국민의회 의원에 뽑혔다. 코뮌을 지지했으나 그 직책은 맡지 않았다. 5월 26일 베르사유군에 붙잡혀 시세 장군의 명령으로 의원 면책 특권에도 불구하고 팡테옹 앞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