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 총회와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운 앙라제 활동가
우편국 직원 출신의 파리 구역 활동가로 앙라제와 함께 생필품 문제와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했다. 1793년 5월 31일~6월 2일 지롱드파 축출 봉기에 참여했다. 이후 혁명정부가 민중의 주권을 억누른다고 비판해 여러 차례 체포됐다.
혁명기의 정치적 위치와 쟁점
바를레는 파리의 구역 총회와 청원·봉기 정치가 국민공회 바깥의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대의기관이 민중의 주권을 대신해 독점할 수 없으며, 생필품과 정치적 결정에 관해 시민이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93년 5월 말~6월 초의 지롱드파 축출은 이러한 파리의 압력이 의회 권력 재편에 실제로 작용한 사례였다.
그러나 구역의 직접 행동이 자동으로 모두의 민주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누가 회의에 참여하고, 무장한 국민방위대와 행정기구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에 따라 영향력은 불균등했다. 바를레가 이후 혁명정부를 비판하며 반복적으로 체포된 것은, 국민공회와 위원회가 민중 동원의 도움으로 권력을 얻은 뒤 그 독자적 압력을 제한한 과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