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오의 신중한 지휘관
“그들은 병력이 부족한 나를 상륙시켜 심각한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미 육군 소장 존 P. 루카스는 두 차례 세계대전에 복무한 직업군인으로, 상륙작전의 기획과 지휘를 맡았다. 1944년 안치오에서 미 제6군단을 지휘하며 기습의 성과를 즉시 확대하기보다 교두보를 공고히 하는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은 작전의 조건과 상급 지휘부의 모호한 명령이 얽힌 논쟁이 되었다. 독일군의 반격을 버텨 냈지만 곧 지휘권을 잃었으며, 이후에도 중국 국민정부 군사고문단과 미 제5군에서 복무했다.
다른 이름: 존 포터 루카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1미 육군 소위 임관, 기병 장교
- 1916멕시코 징벌 원정 참가
- 1918제33보병사단 제108야전통신대대 지휘, 프랑스에서 부상
- 1932–1936전쟁부 참모본부 인사과 근무
- 1941–1942제3보병사단장
- 1943–1944미 제6군단장, 이탈리아 전선과 안치오 상륙작전 지휘
- 1946–1948중국 국민정부 주재 미 군사고문단장
- 1948–1949재편성 미 제5군 부사령관
관련 역사 사건
컬럼버스 전투와 제1차 세계대전
루카스는 안치오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두 차례의 실전을 겪었다. 1916년 3월 9일, 판초 비야의 습격자들이 뉴멕시코주 컬럼버스를 공격했을 때 그는 제13기병연대 기관총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맨발로 막사에서 뛰어나와 기관총 한 정으로 저항을 조직하고 증원 병력과 함께 공격자들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후 존 J. 퍼싱이 지휘한 멕시코 징벌 원정에 참가했다. 이 경험은 제1차 세계대전기 그가 장교로 성장하는 출발점이었다. 1917년 제33보병사단에 배속된 그는 사단 참모와 보병학교 교관을 거쳐 소령으로 진급한 뒤 제108야전통신대대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되어 사단 통신참모를 겸했다. 1918년 6월 23일 아미앵 인근에서 독일군 고폭탄 파편에 중상을 입었는데, 이는 그 대대의 첫 번째 사상자였다. 영국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부상이 중해 제33보병사단에 복귀하지 못했고, 같은 해 10월 31일 중령으로 진급한 뒤 종전 후 정규군 대위로 환원되었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쟁의 나머지 기간을 야전에서 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