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서방으로 망명해 폴란드 공안부의 고문과 숙청을 폭로한 제10국 부국장
갈리치아 메디니의 유대인 가정에서 이자크 플라이슈파르브로 태어나 크라쿠프에서 제화공으로 일했고, 시온주의 단체를 거쳐 공산주의 청년동맹에서 활동했다. 1939년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탈출했으나 소련 내륙으로 끌려갔고, 1943년 결혼하며 아내의 성을 따랐다. 베를링 군의 정치장교를 거쳐 공안부에 들어가 국내군 체포와 1946년 국민투표 조작에 가담했다. 공안부 제10국 부국장으로 비에루트의 직접 지시를 받아 고무우카 등을 체포했다. 1953년 12월 5일 동베를린 출장 중 서베를린의 미군에 망명했고, 자유유럽방송으로 고문과 당내 투쟁을 폭로해 공안부 개편과 폴란드의 10월을 앞당겼다. 1994년 미국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5–1953 보안·정보·치안 · 폴란드
- 1943–1945 군사·지휘 · 폴란드
경력 연표
- 1943베를링 군 정치장교
- 1945공안부 입부
- 1950공안부 제10국 제1부국장
- 1953서베를린에서 미국으로 망명
- 1954자유유럽방송으로 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