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여론 재판에서 종신형을 받고 1956년부터 미국 대사관에 피신한 에스테르곰 대주교·추기경
버시주 체히민드센트의 독일계 성을 쓰는 집안에서 나 1915년 사제가 되었고, 1919년 카로이·쿤 벨러 정부에 잇달아 체포되었다. 뒤에 성을 고향 마을 이름을 딴 민드센티로 바꾸었다. 1944년 3월 베스프렘 주교가 되었고, 11월 화살십자당 정권에 체포되었다가 1945년 4월 풀려났다. 1945년 에스테르곰 대주교·수좌대주교, 1946년 추기경이 되어 교회 학교 국유화 등에 맞섰다. 1948년 12월 체포되어 고문 끝에 자백했고, 1949년 2월 여론 재판에서 종신형을 받았다. 1956년 혁명 중 풀려났고 소련군이 들어오자 미국 대사관에 피신해 15년을 지냈다. 1971년 빈으로 떠났고, 1974년 바오로 6세가 대주교좌 공석을 선언했으며 1975년 빈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4–1974 종교
경력 연표
- 1915사제 서품
- 1919카로이 정부와 쿤 벨러 정부에 체포됨
- 1944베스프렘 주교, 11월 화살십자당 정권에 체포됨
- 1945–1974에스테르곰 대주교, 수좌대주교
- 1946추기경 서임
- 1948–1949체포, 여론 재판에서 종신형
- 1956–1971혁명 중 석방, 부다페스트 미국 대사관에 피신
- 1971–1975빈에서 망명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