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푸홀 가르시아

Juan Pujol García
영국 국가기관 스페인 스페인계 1914–1988 ○ 자연사

허구의 첩보망으로 전황을 뒤흔든 이중간첩

1944년 6월 9일, 그는 노르망디 상륙을 양동으로 보이게 하는 보고를 독일군 수뇌부에 보냈다.

후안 푸홀 가르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기에 독일 정보기관에 침투한 뒤 영국에 충성한 스페인계 이중간첩이었다. 그는 리스본에서 공개 자료만으로 영국에 존재하지 않는 요원망을 꾸며 독일 지휘부의 신뢰를 얻었다. 영국 정보기관과 협력한 뒤에는 가공의 요원들과 제한된 진짜 정보를 엮어 독일의 판단을 유도했다. 특히 포티튜드 작전에서 노르망디 상륙이 양동이고 주공이 파드칼레에 온다는 이야기를 강화해 연합군의 기만을 뒷받침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가공망 운영과 독일군 기만의 세부 기제

1942년 4월 24일 푸홀은 영국으로 옮겨졌고, 정보기관이 붙여 준 암호명은 보브릴이었다가 이후 가르보로 바뀌었다. 그가 맡은 일은 단순한 첩보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요원망을 계속 그럴듯하게 유지하는 작업이었다. 스페인어에 능통한 토마스 해리스가 담당관이 되어 푸홀과 함께 독일 측이 지정한 리스본의 우편 사서함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두 사람이 작성한 편지는 315통, 평균 분량이 2000단어에 이르렀다. 요원망이 이렇게 방대하고 말이 많았기 때문에 독일 측 담당자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영국 내 추가 요원 모집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 망을 유지하려면 어떤 정보를 언제 흘릴지가 관건이었다. 독일 측에 넘어간 내용은 순전한 조작, 군사적 가치가 거의 없는 진짜 정보, 그리고 일부러 지연시킨 값진 정보가 섞여 있었다. 1942년 11월 토치 작전 직전에는 클라이드강의 가공 요원이 병력 수송선과 군함이 출항했다고 보고하게 했는데, 편지는 상륙 전에 발송되었으나 영국 측이 일부러 늦게 도착시켜 쓸모가 없게 만들었다. 독일 측은 늦었다는 답신과 함께 직전 보고가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1943년 독일 측이 더 빠른 연락을 요구하자 두 사람은 가공의 무선 통신원을 만들어 냈고, 그해 8월부터 무선이 주된 연락 수단이 되었다.

가공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조한 요원이 왜 알려진 사실을 놓쳤는지 설명해야 했다. 리버풀의 가공 요원이 항구에서 대규모 함대 이동 직전에 병이 났다고 보고한 뒤, 결국 그 요원을 죽은 것으로 처리하고 지역 신문에 부고를 실어 독일 측을 설득했으며, 독일 측은 그 요원의 미망인에게 연금까지 지급했다. 이 공작은 효과를 냈고 푸홀은 양측 모두에게 신뢰를 얻어 독일 측의 최고 등급 요원 대우를 받았다. 전후 독일 문서를 검토한 결과 포티튜드 작전 기간에 그의 보고 가운데 62건 이상이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정보 요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출생 기록은 사료마다 엇갈린다. 영어·스페인어 판본은 1914년 2월 14일 출생으로, 러시아어 판본은 1912년 2월 14일(28일설도 있음)로 적는다. 사망은 1988년 10월 10일 카라카스로 사료가 일치한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양 진영을 겪은 뒤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모두 혐오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의 정치적 자기 서술로서 당대 조건과 함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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