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된 파리의 시장으로 「굶기는 페리」라 불렸고 뒤에 세속 교육과 식민지 팽창을 이끈 총리
1832년 보주의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변호사가 되었고 『르 탕』에 오스만 지사를 공격하는 글을 써 이름을 얻었다. 1869년 파리 선출 공화파 의원으로 대독 선전포고에 반대했고, 1870년 9월 국방정부의 센 지사, 11월 파리 시장이 되어 포위된 수도의 식량을 맡으며 「굶기는 페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1871년 3월 18일 코뮌 봉기 첫날 파리를 떠났고 티에르에게 강경책을 권했다. 기회주의 공화파의 지도자로 1880~1881년과 1883~1885년 총리를 지내며 초등교육을 무상·세속·의무로 만든 법을 통과시키고 튀니지 보호령과 통킹 정복을 추진했으나, 랑선 철수 소식에 1885년 실각했다.
다른 이름: 쥘 프랑수아 카미유 페리
주요 활동과 소속
- 1870–1885 정부·행정 · 프랑스 국가기관
- 1869–1889 입법·국가 대표 · 프랑스 국가기관
- 1873–1893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69파리 선출 공화파 의원
- 1870국방정부 센 지사, 파리 시장
- 1879–1885교육장관·외무장관
- 1880–1881총리
- 1883–1885총리